[지역포럼]양길현/제주는 戰艦을 원치 않는다

  • 입력 2002년 11월 11일 18시 05분


역사의 순환 속에서 20세기 후반 제주도는 ‘고난의 섬’에서 ‘국제적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오늘날 제주도가 누구나 한번은 가보고 싶은 관광휴양지로 발돋움한 것은 아열대성 기후의 특이함과 함께 제주 산하의 맑음과 청정함, 그리고 한국의 경제성장과 항공수단의 발전 덕분이었다.

만약 한반도의 남쪽 해상에 제주도가 없었다면 바다에서 얻는 실질적인 이익도 줄어들겠지만 남태평양을 향하는 한반도의 위상이 얼마나 허전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게 제주도는 조심스럽게 가꾸어 나갈 ‘한반도의 진주(眞珠)’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최근 제주 남제주군 화순항에 해군기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이 알려지면서 해양안보의 필요성과 지역공동체의 삶이라는 두 문제가 부닥치게 되었다.

해군은 2010년경 이지스 체계의 한국형 구축함을 도입하기로 하는 등 ‘연안해군’에서 ‘대양해군’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남태평양 등 원양에서 해상 교통로의 안전을 확보하고 미래의 해양위협을 방지할 목적으로 보급과 휴식 용도의 ‘함정 전진기지’를 제주도에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에 대해 많은 제주도민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화순항이 원래 계획대로 국제 물류 관광항구로 개발됨으로써 제주도가 ‘평화의 섬’이자 국제자유도시로 나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10월12일 제주 경실련, 제주 YWCA, 제주 환경운동연합 등 제주도내 24개 시민사회단체는 ‘화순항 해군기지 결사반대 도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해 ‘해군기지 반대 2002인 선언’을 발표하는 등 공세를 높여가고 있다. 화순항 해군기지와 관련해 제주도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도민 여론조사에서도 도민 58.2%가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러한 의사는 해양수산부에 전달되었다.

이와 관련, 해양수산부는 2011년을 목표로 전국 22개 연안항에 대한 종합적인 항만개발계획 및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올해 말 기본계획안 확정과 중앙항만정책심의회 심의를 거쳐 제2차 연안항 개발기본계획을 고시할 예정이기 때문에, 화순항 해군기지와 관련해 정부가 어떤 해법을 제시할 것인지에 대해 도민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해군본부와 제주도민간의 견해 차이를 조정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해군기지 건설 문제에 관한 한 군사적 판단 못지않게 정치적 판단도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듯하다. 안보 문제는 일정부분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인식과 유연한 접근이 요청된다.

더욱이 화순항 해군기지처럼 도민의 반대가 큰 사안일수록 지역주민의 의사와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담을 수 있는 해법을 찾기 위해 정부나 해군본부의 각별한 노력이 요청된다. 제주도가 훼손되지 않고 ‘세계 평화의 섬’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정부와 도민 모두 지혜를 모아 나가야 할 때다.

양길현 제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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