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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1월 1일 06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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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단체와 법조계에서는 악성 채무자를 방지할 견제 장치만 마련된다면 기존 파산법의 면책 불허 사유에서 ‘낭비’ 항목을 빼도 된다는 주장이 많지만 일반 시민들은 “돈을 물쓰듯해 파산한 사람들의 빚까지 탕감해 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법원이 ‘낭비자’로 낙인찍힌 사람들의 채무까지 변제 책임을 면제해 줄 경우 허리띠를 졸라매며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대다수 채무자들과 형평이 맞지 않는다는 것.
시민들은 특히 “법무부의 이 같은 방침은 꼬박꼬박 빚을 상환해 온 채무자마저도 악성 채무자로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증권에 손댔다 거액을 날린 회사원 장모씨(39·서울 서초동)는 “2년째 월급의 절반 이상을 매달 원금과 이자를 갚는 데 쓰고 있다”며 “채무 변제를 위한 면책 허가는 성실한 채무자에게 국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형제 남매가 수백만∼수천만원씩 모아 파산위기에 처한 동생의 빚 2억원을 상당 부분 갚아줬다고 밝힌 김모씨(36)는 “정부가 이런 정책을 마련하는 줄 미리 알았다면 굳이 동생의 빚을 대신 짊어질 필요는 없었는데…”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김씨는 “개인 파산자 가운데 낭비벽이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법률로 ‘낭비자’의 채무를 탕감해 줄 경우 파산 및 면책 허가 신청자가 예상외로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파산선고를 받은 사람들은 대부분 ‘낭비벽’이 있다는 게 법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무직인 데다 재산과 수입도 거의 없지만 빚을 얻어서라도 소비지출 규모를 줄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특히 서울지법에 파산을 신청한 사람들의 부채 규모가 보통 수천만∼1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파산 신청자가 낭비벽이나 무절제를 없앨 경우 얼마든지 스스로 회생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편 금융기관 등 채권자측은 법무부의 이 같은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법원에서 파산선고만 받아도 채무자들이 채무를 탕감받은 것처럼 빚을 갚지 않으려 해 상환받기가 어려운데 이들에게 면책 허가까지 마구 내줄 경우 금융거래 전반에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