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영이/가슴졸이는 납북 일본인들

  • 입력 2002년 10월 31일 18시 08분


소가 히토미(曾我ひとみ·43)와 하스이케 가오루(蓮池薰·43).

북한에 납치됐다가 지난달 15일 24년 만에 일시 귀국한 일본인 5명 중 2명이다.

월북한 미군 병사와 결혼해 딸 둘을 남겨 두고 온 소가씨는 귀국 회견에서 무뚝뚝한 어조로 “가족들을 무척 만나고 싶었다”라는 한마디만 해 험악한 분위기마저 자아냈다. 그러나 고향인 니가타(新潟)현에서 가족들과 만난 후 눈에 띄게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마을 주민들이 마련한 행사에서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고향이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진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의 얼굴은 아주 평범한 ‘일본 아줌마’로 변해 있었다.

함께 납치됐던 오쿠도 유키코(奧土裕木子)와 결혼하고 북한 사회과학원 번역요원으로 일해 온 하스이케씨도 가족과 고향 주민들의 환대를 받았다. 친구들과 야구도 하고 가족들과 온천욕도 즐기며 24년 만의 귀향에 감격스러워 했다.

그러나 친구가 넌지시 북한 체제를 비판하자 그는 “역사책을 공부하고 남북 분단의 책임이 일본에 있음을 알았다. 조금이라도 통일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반박했다. 그는 북한을 ‘조국’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두 사람은 이렇게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일본 영구 귀국 문제에 대해서는 똑같이 입을 굳게 닫았다. 일본인들은 소가씨에 대해서는 “북에 있는 가족 때문일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고, 하스이케씨에 대해서는 ‘세뇌의 결과’라고 몰아붙였다.

일본측은 이들을 북한에 보내면 다시는 귀국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일본 체류기간을 연장하고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보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말 열린 북-일 수교회담에서 일본은 납치 문제를, 북한은 경제협력을 우선 논의하자고 고집하다가 끝내 납치도, 경협도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한 채 협상을 끝냈다.

소가씨와 하스이케씨 등 피랍자들은 이런 회담 진행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내내 가슴을 졸여야 했고 결국 또 한 번 절망감을 느껴야 했다.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가족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그들의 애타는 소망은 언제쯤 이뤄질 것인지….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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