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훈/경찰수뇌부 왜 이러나

  • 입력 2002년 10월 9일 19시 06분


요즘 경찰 수뇌부를 보면 ‘정권 말기’라는 게 실감난다. 기강해이와 정치권 눈치보기 현상들이 여기저기에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8일 청와대 치안비서관(치안감)이 서장 때부터 알고 지낸 지역 유지로부터 뇌물과 향응을 받아오다 문제가 되자 사표를 냈다. 그런데 문제는 직속상관인 이팔호(李八浩) 경찰청장이 청와대에서 사표수리를 발표할 때까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청장은 청와대의 발표를 보고서야 진상파악에 나서는 등 당황해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하급 경찰도 아니고 청와대에 파견한 치안감이 사표를 낸 것을 직속상관이 알지 못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현 정부 들어 경찰 최고위급 간부가 비리에 연루돼 ‘옷’을 벗은 것이 벌써 세 번째다. 그것도 경찰청 정보국장, 행정자치부 치안정책관, 청와대 치안비서관 등 경찰 내에서는 세칭 손꼽히는 요직에 있던 간부들이었다.

지난달 초에는 태풍 루사가 전국을 휩쓸고 지나가 너나없이 재해 복구에 나섰던 때 충북경찰청장(치안감)이 골프를 치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그는 옷을 벗지는 않았지만 직위해제됐다.

경찰관의 비리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그런데도 요즘 경찰 돌아가는 모습이 예전에 비해 더욱 한심해 보이는 것은 비리에 연루된 인물들이 최고위급 간부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들은 그 비중으로 인해 자신이 속했던 경찰 조직에 엄청난 상처를 냈다.

이뿐만 아니다. 경찰 내의 정치권 눈치보기 현상도 심상찮다. 간부들이 정권 교체에 대비해 벌써부터 야당 유력인사들 주변을 기웃거리는 현상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경찰청 간부들 사이에는 이 청장이 내달 예정된 경무관급 이상 간부에 대한 인사를 미룰 눈치를 보이고 있는 것도 차기 정권의 눈치보기라는 숙덕거림도 있다. 그는 “아직 방침을 정하지 않았다”거나 “두고보자”며 인사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예정된 인사는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 오해를 피하는 길이다.

이 청장은 9일 예정에 없던 전국 경무관급 이상의 주요지휘관 회의를 열고 ‘엄정한 공직기강 확립’을 다짐했다. 그 다짐이 제대로 이행되는지를 일선 경찰관들이 오히려 주시하고 있다.

이훈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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