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영이/´노벨상 잔칫집´ 일본

  • 입력 2002년 10월 9일 18시 51분


8일 올해 노벨 물리학상에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正俊·76) 도쿄대 명예교수가 선정되자 일본은 잔칫집 분위기다.

87년 이후 과학 분야에서 10년 이상 수상자를 내지 못하다 2000년부터 3년 연속 수상을 기록했기 때문. 전체 분야로는 11번째다.

기초과학에서 구미 각국에 크게 뒤졌다고 지적돼 온 일본으로서는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경기 침체에다 각종 불상사가 빈발하는 가운데 나온 오랜만의 낭보(朗報)이기도 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도 “일본도 아직 쓸만하다. 이제 활력이 되살아나지 않겠느냐”며 기뻐했다.

수상자인 고시바 교수는 어릴 적 군인, 음악가를 꿈꾸다 중학 1학년 때 소아마비를 앓은 뒤 진로를 바꿔 끝내 노벨상을 안은 입지전적인 인물. 학창 시절 말썽을 자주 피웠고, 본인 얘기로는 도쿄(東京)대 물리학과도 꼴찌로 졸업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수상은 고시바 교수의 개인적인 업적을 뛰어넘어 과학자의 신념과 기업의 첨단기술, 정부 지원 등 산관학(産官學) 협력의 결정체로 평가된다. 기후(岐阜)현에 있는 태양중성미자 관측장비 설치비는 5억엔으로 83년 당시로는 파격적인 금액. 추가 건설한 관측소도 100억엔이 넘게 들었지만 그가 “세계첨단이 될 수 있다”고 설득하자 문부성이 선뜻 지원했다. 핵심장비 제작에 난색을 표하던 기업도 시행착오 끝에 세계 최첨단의 설비를 만들어냈다.

일본은 지난해 과학기술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5년간 24조엔을 투자, 앞으로 50년간 노벨상 수상자 30명을 내겠다”고 선언해 “정부가 너무 나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 이를 냉소적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본의 전체 과학기술 투자는 한국의 7, 8배 가량 된다.

한국은 2000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이 노벨상 수상의 전부다. 정부는 이달 초 부랴부랴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전략을 마련했다고 한다.

위대한 과학자는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3년 연속 노벨상 수상은 오랜 투자와 노력의 결실이라는 점을 우리 모두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

이영이 도쿄특파원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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