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자⑤]한국해양연구원 장순근박사

  • 입력 2002년 9월 24일 17시 49분


남극 연구의 개척자인 한국해양연구원 장순근 박사
남극 연구의 개척자인 한국해양연구원 장순근 박사
남극반도의 끝자락 킹조지섬에 있는 세종기지. 비행기를 타도 서울에서 닷새나 걸리는 곳. 5∼8월 겨울에는 뱃길이 끊어지는 것은 물론 비행기로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최저기온은 영하 25℃. 때로는 초속 40m에 이르는 블리저드로 인해 체감온도는 이보다 훨씬 낮고 걷기조차 힘들다.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이곳에서 연구를 한 과학자들 덕택에 우리는 남극조약 협의당사국 자격을 얻어 근처 바다에서 잡은 메로 같은 수산물을 먹고 크릴도 수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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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장순근 박사. 1988∼89년 1차 월동대장을 시작으로 1년 동안 남극에 파견되는 월동대의 대장을 4번이나 맡았다.

“겨울 눈보라가 끝난 다음 찬란한 태양이 비칠 때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남극의 여명과 황혼도 일품이죠. 어떤 사람은 사람과 만날 때 기쁨을 느끼지만 저는 대자연 속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자연을 사랑한다면 과학자가 되는 것만큼 재미있고 보람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가 남극기지에서 물개나 펭귄 그리고 화석을 관찰하면서 보낸 시간은 1800일. 보통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밤 11시까지 연구하고 남은 시간에는 주로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장 박사가 청소년과 대중을 위해 쓴 책은 무려 15권이나 된다.

그가 저술과 번역에 몰두하게 된 것은 1989년 세종기지로 두 번째 가는 길에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지나갔던 비글해협의 경치에 매료되면서였다. 폭이 1㎞ 도 되지 않는 긴 해협 양쪽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절벽, 빙하, 폭포, 험준한 산과 숲에 그는 온통 마음을 빼앗겨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를 번역했다.

“물론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게 가장 힘들죠. 하지만 1999년부터 세종기지도 인터넷이 연결돼 예전처럼 외롭지는 않습니다. 가족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오히려 일에 몰두할 수가 있어 좋아요. 공기가 좋고 전화가 오지 않아 시간이 끊기지 않는 남극의 1년은 문명세계의 3년과 똑같습니다.”

안산의 연구실에는 그가 남극에서 쓴 일기장 14권이 꼽혀있다. “1988년 11월 12일 토요일 5시 반 기상, 아침식사, 장조림, 묵은 김치, 마늘장아찌, 냉동시금치 육개장국...”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차곡차곡 기록이 쌓여서 훌륭한 책이 되는 것이다.

그는 과거 항공사진들과 실측자료를 비교해 세종 기지 앞바다인 마리안소만의 빙벽이 지난 40년 동안 1㎞나 깎여나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실제로 세종기지의 평균 기온은 10년 동안 0.6℃나 상승했다.

“남극은 육지의 9.2%를 차지합니다. 이 육지의 98%가 평균 2160m의 얼음으로 덮여있습니다. 이 얼음이 녹으면 해면이 60m 올라갑니다. 인도양의 몰디브섬은 주민이 대피해야하는 실정입니다.” 장 박사는 얼음이 무너져 내리는 남극에서 연구를 하면서 지구온난현상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또 남극에 간다는 게 쉽지는 않다. ‘솔직하고 거짓말 못하는 성격’의 장 박사는 “킹조지섬의 세종기지는 남극의 열대지방”이라며 “빙하나 고층대기 같은 남극 본연의 연구를 하려면 영하 89.6℃까지 내려가는 남극 대륙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미 정부는 남극기지의 대륙 건설을 위해 2008년까지 쇄빙선을 건조키로 결정했다.

“대륙에 기지를 세우면 다시 월동대장으로 나가는 게 꿈이지만.....” 하지만 그 때는 정년 퇴임 후가 될 지 몰라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장순근 박사는…▼

1946년 함경남도 안변 출생. 고려 때 중국에서 건너온 아산 장(蔣)씨로, 장영실이 그의 선조다. 4살 때 부모와 함께 월남해 고등학교까지 부산에서 다녔다. 서울대에서 지질학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은 뒤 프랑스정부의 장학생으로 보르도대에서 미고생물학(微古生物學)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에서 박사 후 연수를 마치고 1985년부터 지금까지 한국해양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다. 1985년 말 한국남극관측탐험대에 지질학자로 참여한 것이 계기가 돼 남극기지 건설과 연구에 뛰어들었다. 장 박사가 청소년과 대중을 위해 쓴 책은 모두 15권. ‘야! 가자 남극으로’ ‘망치를 든 지질학자’ ‘바다는 왜?’ ‘남극의 영웅들’ ‘신나는 자연탐험’ ‘한 손에 잡히는 과학상식’ 등 최근 3년 동안 낸 책만 해도 6권이나 된다. 장 박사는 저술활동을 하면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아 최근 5년 간 2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다.

◆좌우명 : 매사에 성실하자

◆감명깊었던 책 :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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