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허문명/´아버지´

  • 입력 2002년 9월 18일 18시 35분


13일자 본보 문화면(A19면)에 소개된 ‘아버지란 누구인가’라는 글에 대한 독자들의 엄청난 반응은 의외였다. 전날 어느 선배로부터 시가 적힌 글을 전해 받을 때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동아일보 인터넷신문 동아닷컴(www.donga.com)의 당일 조회 수가 540만건에 달했다고 한다. 동계 올림픽 김동성 선수 금메달 박탈 사건(700만건), 9·11 테러(600만건) 때와 비교될 정도였다. 원문을 팩스로 보내 달라는 전화가 폭주했고 글을 읽고 난 소감과 아버지에 대한 감회를 담은 e메일도 쇄도했다.

음식점 바로 옆자리에서 시가 화제로 올려질 때나, 가족이나 취재원들로부터 전해 듣고 신문을 뒤적였다는 동료들의 얘기를 들을 때는 묘한 기분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를 화두로, 내밀한 가족사를 인터넷에 올린 독자들의 글을 보면서 기자는 한편으로 가슴이 아팠다. 시 하나에 집중된 폭발적 에너지를 걷어내면 그 자리엔 삶이 힘겨운 연약한 아버지들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한 문화평론가는 “시에서 묘사된 아버지는 ‘약하지만 강한 척하면서 감정을 속으로 삭이는 사람’이다. 강한 사람이 약한 모습을 보일 때는 겸손과 힘으로 비치지만 약한 사람이 강한척 할 때는 안쓰러워진다. 이 시가 감동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내 아버지만,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남들도 그렇구나 하면서 ‘집단적 위안’을 받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과연 이 글의 원작자는 누구일까. 한 독자가 보내 준 미국의 인생상담 칼럼니스트 앤 랜더스가 썼다는 ‘아버지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라는 글이 참고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글도 30% 정도만 일치한다.

시를 꼼꼼히 검토한 한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의 글이 아니다. 단어와 문법이 일정하지 않다. 사람들이 보고 덧붙이는 식으로 완성된 집단 창작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현대판 민요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의 원작자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인지도 모르겠다.

허문명기자 문화부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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