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행복한 죽음을 위한 지혜의 샘

  • 입력 2002년 9월 13일 17시 46분


◇나이 드는 기술/앙드레 모루아 지음 정소성 옮김/112쪽 7500원 나무생각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알폰스 데켄 지음 오진탁 옮김/ 249쪽 9000원 궁리

17세기 영국의 왕이었던 찰스 2세는 왕답게 죽었다.

“짐은 죽는 마당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여러분 용서를 바라오.”

나폴레옹은 지휘관이었다.

“프랑스…육군…군의 선두…”

이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프랑스 왕인 루이 14세의 딸이었던 루이스 마리 드 프랑스는 숨을 거두며 이렇게 말했다.

“천국으로, 자 빨리 마차를 달리게 하라!”

자신의 삶에 어울리는 죽음을 맞는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일이다.

프랑스 작가인 앙드레 모루아와 독일 출신으로 일본 조지대(上智大) 교수인 알폰스 데켄의 저서는 각각 삶의 기술과 죽음의 기술에 관한 조언을 담은 책이다. 모루아의 책이 자신의 삶과 주변의 인간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 속에서 마지막까지 차분히 인생의 황혼을 맞아 가는 법을 이야기하는 수필이라면, ‘생사학(生死學)’ 연구자인 데켄의 책은 ‘행복한’ 죽음을 맞기 위해 필요한 ‘죽음 준비’의 방법을 상당히 체계적으로 서술한 실용적인 교과서에 견줄 수 있다.

모루아는 “나이를 먹는 기술이란 무언가에 희망을 유지하는 기술”이라면서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늙는다는 것이 자연스런 일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던 세상이 새로운 사상이나 새로운 스승에게로 향하고 있는 것을 인식하고, 차츰 자기와 멀어져 가는 시대를 무사무욕(無私無欲)의 혜안(慧眼)을 가진 관찰자로서 냉정히 바라보며 차분한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길을 제안한다.

종교적 생활 속에서 삶과 함께 자연스럽게 이야기되던 ‘죽음의 담론’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금기의 영역으로 숨어 들어갔다. 인간의 한계를 끊임없이 극복해 가는 자연과학의 ‘혁혁한’ 발전 속에서 ‘죽음’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됐다. 데켄에 따르면 ‘죽음’이란 인간의 의학이 맞서 싸우는 ‘적’이고, 죽음은 곧 인간의 ‘패배’를 의미하게 됐다. 사람들은 이제 ‘패배’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인간의 ‘승리’인 삶의 쾌락만을 이야기하는 데 열중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쾌락만 좇으며 살다가 문득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데켄은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삶을 더욱 진지하게 만드는 방법을 제안한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죽음을 응시하며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남아 있는 삶의 시간을 더욱 알차게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이에게 ‘죽음준비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죽음준비는 결국 삶을 위한 것이고 삶과 죽음을 위한 기술의 핵심은 ‘진부하지만’ 역시 자신과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삶, 죽음, 사랑이라는 과제는 누구에게나 나머지 두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셋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깊이 통찰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랑에 대해 깊이 인식하면 할수록,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또한 한층 더 깊어질 수 있으며, 죽음에 관한 시야가 넓어지면서 삶과 사랑의 의의를 보다 새롭게 사색할 수 있다.”

이것은 데켄의 말이지만 모루아의 견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삶과 죽음과 사랑의 삼각관계는 어디서나 유효하다.

그렇다면 이 저자들 자신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떻게 맞고 싶어할까. 모루아는 “인생의 마지막에 도시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골에서 애독했던 몇 권의 책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메모를 하면서 읽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데켄은 자신이나 배우자, 가족 등 가까운 사람이 죽을 경우 생길 수 있는 경제적 법률적 정신적 문제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리스트를 작성해 검토하며 대비하겠다고 한다.

아직까지 죽음 앞에 무력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인간이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다가갈 수 있는, 합리적이고 유용한 조언들이다. 하지만 꼭 이런 방법만이 다는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자와 석가모니에게 삶과 죽음에 관해 물었지만 그들이 대답한 것은 대부분 삶에 관한 것이었다. 당장 닥친 삶의 문제도 제대로 모르는데 죽음에 대해서까지 억지로 알려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삶을 직시하며 한 순간 한 순간을 진지하게 살아가라고 했다.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다가 문득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맞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태어날 때도 그렇지 않았던가.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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