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佛 ‘전통’은 獨 ‘속도’에 무너졌다 ´이상한 패배´

  • 입력 2002년 9월 13일 17시 21분


◇이상한 패배:1940년의 증언/마르크 블로크 지음 김용자 옮김/304쪽 1만2000원 까치

1940년 독일에 굴복한 프랑스의 비극을 총체적으로 분석한 이 책은 참으로 모든 이에게 권하고픈 책이다. 누군가는 의아해 할 수도 있다. 이 책은 기껏해야 회고록이고, 잘해봤자 역사서가 아닌가. 옳은 말이다. 정녕 이 책은 한 프랑스 병사의 사적 체험담이며, 한 프랑스 역사가의 진솔한 패전기록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블로크의 ‘증언’은 프랑스인만을 위한 것도, 역사가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의 고백록은 우리를 향한 것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우리를 위한 작품이다. 단언컨대, 성공과 행복의 비결이, 좀더 인간적인 공동체 건설의 비법이 이 속에 있기 때문이다.

새 천년의 문턱에서 우린 늘 숨가쁘다. 변화의 속도가 현란하기 때문이다. 컴퓨터, 휴대폰, 오디오, 텔레비전. 오늘 산 물건은 내일이면 벌써 어제의 고물이다. 이메일, 이모티콘, 아바타 등의 신조어도 이미 낡아버렸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생활이 우리의 삶을 양분한지 이미 오래이다. 그래서 가끔 우린 포기하고 싶어진다. 촉새의 분주한 걸음으로 변화를 뒤쫓느니, 차라리 모든 것 던져버리고 한가로운 전원으로 훌쩍 도피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위대한 역사가, 블로크의 충고는 좀 다르다. 그는 오히려 ‘놀라움과 새로움에 적응’할 것을 적극 권고한다. ‘이 세상은 새로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본질적으로 변화의 학문’인 역사학도 다양한 문명들의 비교를 통해 피교육자들에게 ‘차이와 변화의 개념’을 가르쳐 줘야 한다. 이를 통해 ‘세상의 끊임없는 변화에 대한 명확한 방향감각’이 심어지고, 그럼으로써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창조를 위한 정신적 토대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블로크의 이런 충고를 낡고 무가치한 것으로 보고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블로크의 권고는 ‘1940년의 패배’라는 참극을 통해 그가 깨달은 역사적 교훈의 정수다. 그가 볼 때, 프랑스의 참패는 너무도 ‘이상한 패배’였다. 결코 질 수 없는 상대에게 무릎꿇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볼 때 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참패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상한 패배일까. 이는 한 마디로 프랑스가 너무도 빨리 항복했기 때문이다. 독일이 프랑스를 정복하는 데 소요된 기간은 채 두 달도 안 됐다. 1940년 5월 10일 침공해서 6월 22일 휴전조약(실질적인 프랑스의 항복)을 얻어냈으니 말이다. 어찌된 일일까. 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패배’가 도대체 어떻게 일어났단 말인가.

블로크의 답변은 간단하다. 이는 프랑스가 ‘고물 박물관’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즉, ‘변화라는 저항할 수 없는 법칙’에 순응하기는커녕, 어제의 것만을 고집하고 그에 안주하려던 ‘바보 같은 전통고수주의’가 프랑스의 참패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독일군은 속도 개념에 입각하여 현대전을 벌였다. 우리는 어제 또는 그저께의 전쟁을 하려 했을 뿐 아니라, 독일군의 전쟁 수행을 보고 새로운 시대의 가속화된 진동과 연결된 리듬을 이해할 줄 모르거나 이해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의 전장에서 충돌한 두 적대세력은 인류사의 서로 다른 시대에 속해 있었다. 결국 우리는 식민지사에서 익숙한 투창 대 총의 전쟁을 다시 한번 벌인 것이고 이번에는 우리가 원시인 역할을 했다.”

요컨대 블로크가 볼 때, “너무 느린 리듬으로 진행되는 나날, 버스의 느린 속도, 게으른 행정, 매 단계에서 되는 대로 내버려두어 누적되는 시간의 낭비, 주둔지 카페의 한가함,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는 저질의 정치적 책동, 돈벌이가 적은 수공업자들, 서가가 비어 있는 도서관, 익숙한 것만을 좋아하는 취향, 달콤한 습관을 흔들 수 있는 모든 새로움에 대한 경계심”이 독일의 ‘빠른 속도’앞에 프랑스를 굴복시켰던 것이다.

이 급변의 시대에 우리는 여유를 꿈꾼다. 가끔은 한가한 어슬렁거림을 욕망한다. 이러한 욕구가 분명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빨리빨리’로 점철된 우리 역사에서, ‘느림’은 하나의 미덕일 수 있다. 하지만 서두름과 신속함이 구분되어야 하듯이, 느긋함과 게으름은 구별돼야 한다. 오늘날은 속도전의 시대이다. 그리고 당연히 우린 승리를 갈망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놀랍게도, 그 구체적인 해법들이 이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책, 1940년 프랑스의 패배 원인을 분석한 블로크의 낡은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현식 한양대 교수·사학과 HyunSik@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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