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성원/"또 사진찍으러 왔소"

  • 입력 2002년 9월 5일 18시 45분


박성원기자
박성원기자
수마가 할퀴고 지나간 강원 강릉시 일대에는 요즘 정치권 인사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3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대표,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가 다녀간 데 이어 4일엔 정몽준(鄭夢準) 의원, 이한동(李漢東) 전 국무총리,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 부인 한인옥(韓仁玉)씨, 5일엔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 부인 권양숙(權良淑)씨가 수해현장을 찾았다.

악취를 무릅쓰고 현장을 둘러보는 국회의원들이나 팔을 걷어붙이고 침수된 가재도구 닦는 일을 거드는 ‘사모님’들의 모습에 일부 주민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고마워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대다수 수해지역 주민들 목소리에는 정치권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차 있다. 평소에는 정쟁(政爭)에만 몰두해 온 정치인들의 위문행렬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인 듯했다.

음식점이 통째로 물에 잠긴 최모씨(51·강릉시 노암동)는 “어제까지 ‘병풍(兵風)’이 어쩌고 하면서 싸움질만 하다가 몰려와 서민 걱정으로 날을 지새운 사람들처럼 심각한 표정을 짓는 걸 보자니 쓴웃음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재민 돕기 활동에 나선 시민단체 책임자 김모씨(52)는 “그나마 현장에 발이라도 들여놓는 분들은 낫다. 어떤 장관은 멀찌감치서 한번 휘둘러보고 돌아가 주민들의 욕설이 무성했다”고 전했다.

이런 불신감 때문에 일부 주민들은 복구지원을 위해 방문한 정치인들에게 “뭐하러 온 사람들이냐”며 거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수재 극복을 위해 온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하는 때에 정치인들의 수해현장 방문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재민들의 성난 목소리는 평소 근본적인 수해대책 마련이나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다가 ‘생색내기’에만 바쁜 듯한 정치권에 대한 총체적 분노가 아닐까.

한 주민은 “정치권이야말로 국민불신을 씻어낼 근본적인 침수방지 대책이 필요한 동네 아니냐”고 꼬집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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