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종구/한나라 핵심 빠진 해명

  • 입력 2002년 9월 5일 18시 42분


“공문에 도장을 찍은 실무자를 문책하겠습니다.”

한나라당이 지난달 말 KBS MBC SBS YTN 등 방송사에 보낸 ‘불공정보도 시정촉구’ 공문을 둘러싼 ‘신(新)보도지침’ 논란과 관련해 5일 내놓은 대책의 요지다.

방송사들이 언론에 대한 간섭이라며 반발하고 민주당이 거들면서 파장이 커지자 뒤늦게 유감을 표명하고 사태 수습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대응은 본질을 제대로 짚지 못한 채 곁가지에 매달리는 듯한 인상이다.

공문을 발송했던 공정방송특위의 현경대(玄敬大) 위원장은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방송보도로 인한 피해를 보지 않으려는 절박한 심정에서 협조를 요청한 것인데 진의가 잘못 전달돼 죄송하다”고 말했다.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앞으로는 공문을 보낼 때 대표의 결재를 꼭 받도록 해서 재발을 막겠다”고 말했다. 지도부도 모르는 사이에 문제의 공문이 발송됐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결재라인을 바꾼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한 중진 의원은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한건주의식 경쟁 때문에 당내에서조차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는 지적을 받는 공문이 여과 없이 생산되고 무사통과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최근 우리 당에 대한 특정 방송사의 편파 보도에 대해 당원 모두가 분통을 터뜨리고 있지만 보도내용의 불공정성을 조목조목 지적한 뒤 공정보도를 호소해야 할 텐데 밀어붙이기식으로 덜렁 공문부터 보내는 바람에 문제가 터졌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제기했던 편파보도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지만 지도부는 애꿎은 실무자 탓만 한 채 방송사와 적당히 타협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감사원법을 개정해 MBC를 국정감사 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으나 MBC가 반발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있다.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의 태도에서는 진솔한 내부 성찰도, 공정보도에 대한 원칙있는 대응도 찾아볼 수 없다.

윤종구기자 정치부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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