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동우/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하여

  • 입력 2002년 9월 1일 18시 56분


sustainability(지속가능성). 원래 이 단어는 영어사전에 없는 단어였다. sustain(견디다, 지속하다)이라는 표제어에서 파생된 단어로 형용사인 sustainable(지속할 수 있는)과 명사로는 sustenance(지탱, 유지)와 sustentation(부양, 부조) 등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새로운 명사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유엔의 공식문서에서도 사용하는 단어가 됐다. 나아가 이 단어는 영어사전에 있건 없건 현재와 미래의 지구촌 사람들의 생활을 지배할 가장 중요한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

지난달 26일부터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는 매우 중요한 국제회의가 열리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WSSD)’가 그것이다. 4일까지 전 세계 106개국의 국가원수와 189개국 정부와 국제기구 대표, 그리고 각국의 비정부기구(NGO) 등 6만명이나 참가하고 있는 매머드회의다. 토의내용은 환경보존과 빈곤국지원 그리고 오염원 배출 감소를 위한 갖가지 방안이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래세대의 몫인 환경과 자원에 대한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현세대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즉 ‘지속가능한’ 발전방안이다.

우리 개개인이 이번 회의의 중요성을 인식하든 못하든 앞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은 이 회의 결과에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 자동차를 가진 사람은 당장 내년부터 대기오염 부담금을 물어야하고 농어민들도 앞으로 정부의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될 전망이다.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 이삼열 원장에 따르면 지속가능성이란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2년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라는 논문을 발표한 이후였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이 지구의 부존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파괴해 지구촌의 경제성장추세는 어느 선에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내용의 이 논문은 엄청난 파장을 낳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자원과 환경을 일정수준 유지시킬 수 있는(지속가능한) 범위 내의 발전 개념이다.

지속가능성의 개념은 처음에는 환경부문에서 출발했으나 차츰 그 적용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70년대 중반부터 일종의 사회운동 차원에서 이 개념을 사용했다.‘정의롭고 참여적이며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모토가 그것이다.

최근에는 이 단어가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고 서로 공존하기’라는 개념으로 그 외연이 확대되는 느낌이다. 이렇게 되면 이 단어는 이미 철학용어가 된다. 이 세상의 모든 갈등과 분쟁과 불화의 원인행위가 이 개념 속에서 용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분야에서의 지속가능성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등장하고 있다. 앞으로 이 개념이 적용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직도 개발위주의 발전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은 듯하다. 특히 공무원 사회가 그렇다. 최근 환경부와 갖가지 사안으로 부딪치고 있는 산업자원부나 건설교통부 등의 경우도 그러한 유형에 속한다.

어디 공무원사회뿐이랴. 실제 우리 주변에는 지속가능하지 못한 일이 너무나 많다. 우선 눈에 핏발을 세우며 죽자살자 쌈질을 하고 있는 정당들이 그렇다. 정치권의 이전투구는 ‘말살’과 ‘황폐’의 이미지만을 국민에게 남길 뿐이다. 그리고 끝없이 되풀이되는 지역과 이념갈등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생활도 정치활동도 지속가능하게 해나갈 수는 없는 것일까.‘너와 내가 지속가능한 관계를 만들어 가자’는 것은 정말 멋있는 말이지 않은가.

정동우 사회2부장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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