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경환/性범죄자 공개 위헌 아니다

  • 입력 2002년 8월 27일 18시 24분


헌법은 개인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가, 아니면 공동체의 질서를 더욱 중시하는가. 지극히 본질적인 물음인 만큼 뚜렷한 결론이 날 수 없는 논쟁이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화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흔히 자유를 지상의 가치로 신봉하는 지식인에게 팽배한 관념은 국가는 개인의 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일체의 규제는 악이라는 생각에 젖기 십상이다. 웬만큼 먹고 살 만해지니 더욱 더 그런 성향이 짙어진다. 극단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내 돈으로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사는 게 무슨 죄가 되나?” 그게 투기용 부동산이든, 어린 여아의 몸이든.

▼신상공개는 범죄예방 수단▼

그러나 그런 게 아니다. 법은 건전한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다. 한 개인이 중요한 만큼 불특정 다수가 함께 사는 사회도 중요한 것이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자의 신상을 일부 공개하는 제도가 헌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면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사를 제청했다. 문제가 된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흔히 ‘청소년 성매매’라 불리는 사회악을 포함해 청소년을 상대로 하는 성범죄를 방지하고자 제정된 법률이다. 법전의 구절대로 “청소년의 성을 사거나… 청소년에 대한 성폭력 등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여 이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고안된 제도다. 위헌심사가 제청된 조항들은 이 법을 위반한 범법자의 신상 일부를 공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위헌론은 이렇듯 ‘망신’을 주는 제도는 인격의 존엄을 지고의 가치로 신봉하는 우리의 헌법질서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여러 법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느 법리도 건전한 사회인의 입장에서 볼 때 설득력이 약하다. ‘동의’를 전제로 한 자유로운 성의 거래이므로 폭력성이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미성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에 동의가 능사가 아님은 너무나 자명하다. 우리 형법은 비록 합의가 있더라도 13세 미만의 여성을 간음하는 행위를 ‘강간’으로 취급한다. 성이 자유롭다는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훨씬 높은 나이를 성행위 동의의 요건으로 규정한다. 판단력이 약한 청소년의 성을 돈으로 사는 것은 단순한 성매매가 아니다. 그것은 ‘성적 학대’ 내지는 ‘성적 착취’인 것이다.

현행의 신상공개제도는 행위자에게 망신을 주어 재차 범행을 방지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다. 일반인에게 경각심을 촉구해 사회 전체 차원에서 청소년 성범죄를 예방하자는 데 주목적이 있다. 형벌이 확정된 후 추가적으로 범법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일사부재리의 원칙 내지는 이중처벌 금지에 위반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불이익을 주는 모든 조치가 형벌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형벌과 동시에 보안처분을 부과할 수도 있고, 공무원이 형을 선고받거나 징계처분을 받은 경우에도 퇴직급여를 감액할 수 있다고 헌법재판소가 판결한 바 있다. 신상공개는 전형적인 형사제재와는 본질, 목적, 기능이 다른 새로운 형태의 범죄예방수단이다. 그러므로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헌법이 금지하는 이중처벌이 아니다.

신상공개 결정을 법원이 아니라 행정기관인 청소년보호위원회가 내린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사람도 있다. 물론 우리나라 법원도 외국의 예처럼 정형화된 형벌과 함께 이른바 형평적 구제를 부과할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헌법 위반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신상 공개는 불완전 공개다. 사진과 주민등록번호를 공개하지 않는다. 가해자의 거주지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전국적 차원에서 행해지므로 특정성이 약하다. 더욱 상세한 신상 공개라도 인권침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국제적 보편성을 중시하는 ‘국제인권’의 논의에서도 성문제만은 제외하고 있다. 그것은 한 나라의 고유한 도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성에 대한 어른의 착취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예쁘다고 뽀뽀하지 말라˝▼

그러나 한 가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 있다. 행여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일상 속에 성매매라는 악의 씨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린 딸을 ‘예쁘다’고 칭찬하지 말라. 예쁘다고 뽀뽀하지 말라. 절대로 뽀뽀의 대가로 사탕도 용돈도 주지 말라. 자신의 몸이 재물이 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여아의 정신세계는 파멸한다.” 어느 육아서의 한 구절이다.

안경환 서울대 법대 학장·한국헌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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