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인철/교과서 간담회도 ´빨리 빨리´

  • 입력 2002년 8월 6일 18시 29분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내용이 문제된 뒤 교육인적자원부가 6일 처음으로 역사 전문가들을 초청해 가진 간담회는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원순(李元淳) 전 국사편찬위원장, 조동걸(趙東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장,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이만열(李萬烈) 위원을 비롯한 참석자 대부분이 60, 70대의 역사학계 원로들이었다. 이들이 학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학문적 업적을 보면 모두 충분히 자격이 있는 분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교육부가 학계의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한 간담회였다면 참석자의 연령층을 다양화해 40, 50대 전문가들도 포함시켰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자리였다.

연세대 유영익(柳永益) 석좌교수는 이날 “교과서 검정위원이나 집필자를 선정할 때 연령별 안배도 중요하다”며 “젊은 사람들한테만 맡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유 교수의 말은 원로의 온건한 학문 태도와 경륜을 활용하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역사라는 학문은 학자의 세대에 따라 사관이나 학문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 수렴의 자리에서도 연령별 안배가 필요한 것이었다.

또 이날 간담회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토론하기보다는 “이런 행사를 했다”는 요식행위처럼 보였다.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고 발언이 조금 길다 싶으면 사회자가 조바심을 냈다. 간담회가 1시간쯤 진행되자 주최측은 “식사나 하면서 이야기하자”고 권유했고 모두 자리를 옮겼다. 한 참석자는 이런 분위기가 못마땅했는지 “교과서 문제의 중요성에 비추어 간담회로 해결될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금의 교과서 검정 논란은 촉박한 검정 일정에 쫓겨야 하는 ‘빨리 빨리’ 풍토에서 빚어진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문제가 된 교과서를 어떻게 수정 보완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일마저 졸속으로 진행된다면 학생들이 올바른 교과서로 역사를 공부할 수 있게 될지 걱정스럽다.

이인철기자 사회부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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