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일본]홍역 치른 삿포로

  • 입력 2002년 6월 8일 23시 13분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벌어진 7일 밤. 삿포로는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승리의 기쁨에 취한 잉글랜드 응원단은 속속 시내에 모여들었다.

오전 1시. 삿포로 중심가 스스키노 사거리에 1500명의 인파가 모여 춤과 노래로 승리를 만끽했다. 일본인들은 그런 잉글랜드 응원단을 구경하며 즐거워했다. 덩달아 일본 젊은이들도 흥분했다. “멋있다”를 연발하며 잉글랜드 응원단 사이에 끼어들었다. ‘잉글랜드’ ‘베컴’ ‘삿포로’ 등의 구호가 터져나왔다. 경찰들만 죽을 맛이었다. 연신 확성기로 “이제 집으로 돌아가 주세요”를 외쳤다.

그래도 같이 어울렸다면 소란이 아니라 축제였다. 폭동은 없었다. 삿포로 경찰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들에게 월드컵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훌리건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구원(舊怨)이 있는 아르헨티나와 맞붙는 잉글랜드 응원단이 언제 폭도로 변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더구나 삿포로시 스스키노는 일본 전국에서도 가장 유명한 유흥가 중 하나다. 폭동이 발생할 조건은 모두 갖춘 셈이다.

사실 삿포로시의 준비는 철저했다. 폭동에 대비해 페리를 대기시켰다. 유치장이 부족한 삿포로에서 그들을 격리하기 위해서였다. 경기 전날과 당일 길목마다 배치된 7000여명의 경찰은 자리를 뜨지 않고 주의를 기울였다. 외국에서 훌리건 식별 전문 경찰관을 초빙했다. 오도리공원에 셔틀버스 정류장과 축구 마을을 설치해 응원단을 한 곳에 모이게 한 것도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상점에는 ‘훌리건 출입금지’라는 애교 섞인 경고판을 붙이고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 일부 상점은 강화 유리로 창문을 바꿔 끼웠고 술집의 맥주잔을 플라스틱 제품으로 바꾼 곳도 있었다. 훌리건이 무기로 사용할 만한 연장 등을 취급하는 상점은 셔터를 내렸다. 이 모두가 단 하루를 위한 준비였다.

다음 날 아침 삿포로 시내 거리는 한산했다. 전날 밤 삿포로를 휩쓸었던 ‘태풍’은 벚꽃이 지듯 한 순간에 사라졌다. 걱정했던 폭동은 없었다.

어쩌면 삿포로의 철저한 대비책이 폭동을 예방한 것일지도 몰랐다. 확성기를 사용한 것을 제외하고는 경찰이 한 일은 흥분한 응원단을 지켜보는 것말고는 없었다. 절대로 그들을 자극하지 않는 것도 삿포로 경찰의 대책 중 하나였다.

삿포로〓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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