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월드컵]美 “훈련량 더 줄일것” 여유만만

  • 입력 2002년 5월 28일 18시 58분


브루스 아레나 미국 축구대표팀 감독(오른쪽)이 28일 서울 매리어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변영욱기자
브루스 아레나 미국 축구대표팀 감독(오른쪽)이 28일 서울 매리어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변영욱기자
“길고 짧은 것은 뚜껑을 열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여유있는 미소 속에 뭔가 감춰져 있을까. 미국 대표팀 브루스 어리나 감독은 28일 오후 서울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운동복에 슬리퍼를 끌고 등장했다. 산책이라도 하려는 듯한 차림으로 가볍게 인터뷰를 시작한 그는 내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때로는 농담까지 섞어가며 능숙하게 받아넘겼다.

24일 입국한 미국 선수단은 그동안 마치 여행이라도 온 듯 유유자적한 모습이었던 게 사실이었다. 오전 오후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다른 팀과 달리 전날까지 공을 찬 시간은 고작 4시간 정도였다. 이날 역시 예정된 오전 훈련을 돌연 취소했고 오후에는 당초 우루과이와의 연습경기를 하려던 계획 대신 미사리구장에서 비공개 훈련을 가졌다.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미국은 리옹 외곽 시골의 고성에 캠프를 차려 유배생활을 했으나 이번 대회에서는 서울 한복판 특급 호텔에 둥지를 틀고 수시로 자유시간을 가졌다. 이태원 쇼핑을 하는가 하면 숙소 근처 백화점 이용도 잦았다.

대회 기간에도 비무장지대 관광 또는 단체 골프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느긋한 일정이 이어지면서 월드컵 지역예선 통과라는 당초 목표를 달성한 미국이 본선 성적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일기도 했다.

기자회견에서도 허술한 듯한 미국의 대회 준비 상황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하지만 오히려 어리나 감독은 “훈련량은 전혀 부족하지 않으며 다음달 5일 포르투갈과의 첫 경기에 맞춰 점점 더 줄여갈 것”이라고 말했다. 연습경기가 전혀 없었던 데 대해서는 “19일 네덜란드와의 최종 평가전을 치렀기 때문에 포르투갈전까지 경기 감각을 유지하는 데 문제없다. 우리 자체의 청백전으로도 충분하며 선수들의 컨디션은 최상이고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큰소리쳤다.

느긋하게 맞받아 치는 가운데 어리나 감독은 조별리그 상대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하고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최근 포르투갈-중국, 폴란드-성남 일화전 등을 꼼꼼히 지켜본 듯 경기 내용을 훤히 꿰고 있었다.

어리나 감독은 이번 월드컵을 ‘이변의 대회’로 예상했다. “절대 강자도, 약자도 없는 가운데 한국이 많은 발전을 했듯 다른 팀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팀도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고 경기장에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어리나 감독의 이색 행보가 ‘허허실실’ 전략인지, ‘허풍’인지가 드러날 날도 그의 말대로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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