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종철/값싼 처방이 최선의 의술인가

  • 입력 2002년 5월 24일 18시 48분


최근 동아일보가 병원감염 집단 손배소 사건의 특종 보도에 이어 연재한 ‘의료시스템 긴급점검’ 시리즈는 당사자인 의료계와 정부가 해야 할 고백을 제3자가 대신해 주었다는 점에서 부끄럽긴 하지만 만신창이에 가까운 의료시스템의 문제점을 비교적 근본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시의적절한 기획이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삶의 질과 관련된 보건복지 부문, 그 중에서도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 부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의료시스템의 문제는 그동안 대한의사협회를 통해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왔고,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해왔지만 매번 집단이기주의라는 논리에 밀려 그 참뜻이 왜곡되곤 했는데 이번에 객관적 시각으로 공론화시킨 점에 대해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물론 그동안 의사들의 이기주의와 잘못된 관행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필자 또한 이들의 잘못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잘못된 부분은 지적받고 바로잡아야 발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문제는 의사 한두 명 또는 몇몇 병원의 잘못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고, 그 근본에는 잘못된 보험정책과 무리한 의약분업 시행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보험정책의 실패로 비난을 면키 어려워진 정부가 환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 획일적이며 재정 절감만을 앞세운 법규정으로 일관하다 보니, 환자 입장에 서서 좋은 재료를 활용해 선진적 최신 치료를 시행한 병원은 결국 법규정을 어긴 병원이 되어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면서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리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동아일보가 지적한 대로 의료인력의 편중 역시 심각한 문제다. 이대로 가다가는 생명과 직결되는 각종 고난도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외국행을 택하거나 외국의 의료진을 수입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러한 문제 이면에는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의료정책과 투자가 자리잡고 있다.

의료의 공익적 측면을 감안하면 공공의료 비율이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 하나 선진국에 비하면 열악하기 그지없다. 영국 96%, 일본 64%, 미국 67%인 데 비해 한국은 9%에 불과하다. 또한 정부예산 중 보건의료 예산은 선진국이 15%인 데 비해 우리는 0.38%에 불과하다고 한다. 1977년 저수가를 기본으로 하는 의료보험 도입 이후 25년 동안 우리의 보험정책은 국민건강이나 의료의 질 향상보다는 한마디로 재정 절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병원이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의 잘못을 과감히 반성하고 거듭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국민들도 무조건 값싸게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적정비용이 지불되지 않으면 결국 의료의 질 저하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오고 만다.

현재와 같은 의료시스템으로 다가올 의료개방을 맞는다면 우리 의료계의 앞날은 불 보듯 뻔하다.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의료계 위기론이 대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종철 삼성서울병원 원장·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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