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5…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15)

  • 입력 2002년 5월 8일 17시 46분


무당3 이 애가 내 손녀딸이야! 우리 손녀딸! 아이고 귀여워라 정말 귀엽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손주야 아이고!

유미리의 얼굴이 무당의 눈물과 콧물에 젖는다.

유미리는 목구멍에 힘을 주어 웃음을 참고, 이렇게 참고 있다가 울음이 터져나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무당과 몸을 밀착시키고 있다.

무당3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영남루 밑에서 고무신을 팔아 살았다 집 마당에는 커다란 버드나무가 있었지 개나리하고 진달래도 피어 있었고 아들을 낳고 딸을 낳았지만 할매는 고생이 많았다 할배의 전 부인이 두 딸을 버려두고 재혼했다 첩은 갓난아기를 내팽개치고 없어져버렸고 (유미리의 어깨에 턱을 올려놓고 이신철을 노려본다) 그 애가 너다 어미에게 버림받은 두 딸을 시집보내고 너 어미가 아들을 데리러 올 때까지 10년 동안 할매는 정말 고생이 심했다 할매가 어떻게 견뎌냈냐고! 할배의 눈에 자상함이 있었고 할배의 팔에 힘이 있었고 할배의 가슴이 넓고 따뜻했기 때문 아이가 전쟁이 끝나고 일본사람들이 다 제 나라로 돌아가서 이제야 할배하고 내 배를 앓아 낳은 자식들하고 오붓하게 살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고! 할배가 없어져버렸다 일본으로 건너 갔다는 것을 알고 할매는 자식 넷을 데리고 부산행 밤차를 탔다 부산항에서 식당을 차려놓고 일본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우철을 몰랐다 일본에 가서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할매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그러모아 배를 탔다 시모노세키(下關)에 도착하자 조선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다 이우철이란 남자를 모릅니까? 키는 5척 9촌에 나이는 마흔 얼굴은 갸름하고 눈은 작지만 여우처럼 위로 찢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웃으면 눈꼬리가 쳐지면서 아주 상냥하게 보입니다 아주 자상한 사람이예요 얘기하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을 잘 웃깁니다 장거리 런너였습니다 지금은 달리지 않아도 근육은 그대로입니다 언제든지 달릴 수 있어요 어쩌면 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달리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모두들 넋을 잃습니다 등을 좍 펴고 두 팔을 힘차게 흔들면서 날아오르려는 두루미 같은 모습입니다 한 번 달리면 아무도 그를 붙잡을 수 없습니다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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