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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4월 26일 17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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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러 갔다가 신간 코너에서 천하에 무뚝뚝한 제목의 이 책 ‘남자’를 봤더라면 아마도 나는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남자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를 유혹하기 위해선 책 제목이 ‘여자’였어야 한다. 이 책은 동아일보 허문명 기자가 ‘나를 위해서 쓴 책 같다’며 건네 주는 바람에 겨우 책장을 넘겼다.
그동안 남녀 두 인물 중에서 유독 남자를 만물의 영장쯤으로 올려놓고 이러쿵 저러쿵 분석해 낸 책들은 꽤 많이 있었다. 그러나 남자를 지구상의 숱한 동물 중에서 가장 괴상망측한 동물로 상정해서 갈기갈기 해부한 책은 이번 책이 처음이다.
나는 서평을 써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시덥지 않게 읽다가 모르는 새 그만 빠져 버렸다. ‘50여 년이나 소위 남자 행세를 해 왔으니 남자에 관해서라면 내가 통달한 사람인데 뭐가 모자라 독일 남자(저자)의 얘기까지 읽어야 하나’ 생각 했는데 남자인 나 자신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남자’ 자체가 이토록 복잡 미묘한 제품인지, 이토록 연구해 볼 만한 소재인지를 미처 몰랐다.
이 책은 일견 남자라는 특수 종족의 비밀스런 내신 성적표같아서 남자들이 먼저 살펴보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며 재출발을 하게 만들지만 당장 여자들이 본다 해도 어쩌면 남자들보다 훨씬 더 통쾌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남자들의 성급함과 천박함에 관한 실체와 원인이 논리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구성은 매우 특이하다. 세 종류의 책이 한데 묶여 있는 것같다. 저자가 쓴 남자에 관한 논문과 ‘남자의 초상화’라는 제목의 소설 형식의 글, 그리고 불란서 극작가 지로두가 쓴 제우스를 비롯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다시 각색해서 만든 ‘여성들의 희극’(암피트리온 또는 알크메네의 딜레마)이라는 장편 연극 대본이 가감없이 일곱마디로 잘리어서 책속에 골고루 섞여있다.
이 책의 품격을 교묘하게 과시하는 고대 연극 대본의 핵심은 ‘원초적으로 여자는 자연적이고 남자는 인위적’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여자는 천진난만하고 남자는 그 반대라는 얘기다.
남자와 달리 여자의 경우 평생을 살며 어린 아이를 예뻐하고 보살펴 나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유전적 천진난만이라는 얘기다. 상대적으로, 남자는 괜히 바쁘다. 어린 아이를 예뻐할 새가 없다. 우선 젠틀맨쉽을 발휘해야 하고 멋진 여자들과 적절히 바람도 피워야 하고 공부나 연구도 해야 하고 예술이나 취미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돈도 벌어야 하고 권력도 쌓아야 하고 명성도 얻어내야 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 떠벌려야 한다. 남자는 집안일이나 사랑표현 따위에는 영 맘이 쏠리지 않는다.
따라서 남자는 총체적으로 천박함의 대명사가 된다. ‘남자’라는 책 제목이 껄끄럽고 너무 노골적이어서 이 책을 구입하는 데에 용기를 발휘해야 했던 소수의 여자들은 간 큰척하던 남자들의 망가진 장면을 목격하는 통쾌함을 보상받게 된다.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 과대 평가를 받고 있으며 남자라는 존재는 진화과정이 미아(迷兒)이자 실수한 오발탄이라는데 어찌 여자의 입장에서 통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책에는 결론도 없고 해피엔딩도 없다. 남자는 영원히 우는 존재로 여자는 웃는 존재 정도로 끝을 맺는다.
책 제목이 ‘남자’일 뿐 오늘을 사는 나같은 보통 남자가 지닌 온갖 사랑이나 섹스문제에 대한 해결책같은 것은 아예 없다. 이 책의 ‘남자’는 겨우 사랑이나 섹스 따위로 골머리를 앓는 초년생 ‘남자’가 아니다.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를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견습생 ‘남자’가 아니다.
이 책이 겨냥하는 지점은 이미 다채로운 사랑이나 화려한 체위의 섹스에 지쳤거나 실패한 사람들이 들끓는 저쪽 변방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적어도 이 책에선 내 개인의 경우처럼 ‘나라는 남자는 왜 두차례씩이나 사랑과 결혼에 실패를 했는가’ 하는 높은 차원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을 해준다.
이 책을 잘 살펴 보면 전부(8장) 내 질문에 대한 답변서 노릇을 한다.
가령 1장에서는 사랑의 공동체를 파괴한 죄를 상대에게 떠 넘겼기 때문에, 2장에서는 새로운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3장에서는 외부 영역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동경 때문에, 4장에서는 자신의 역할과 완전한 일체감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5장에서는 자신의 새로운 이미지를 위해 누군가를 무차별 공격해야 하기 때문에, (점점 답변이 점입가경으로 들어가) 6장에서는 섹스 파트너의 교체를 이 쪽에 대한 사랑의 결여가 아니라 오로지 남자라는 것을 확인하는 단순한 행동일 뿐이었는데….
7장에는 위장된 트릭과 마법의 덫에 걸려 편집증 환자로 변했기 때문에 그리고 마지막 8장에서는 사랑의 종말을 의미하는 갈등의 결과로 기이한 악순환, 즉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 자신이 그동안 쭉 틀림없는 남자여서 그랬을까. 나는 이제껏 다른 건 몰라도 ‘남자’라는 소재에 대해선 별 감흥이 없었을 뿐 아니라 추호도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해봤다. 그러나 우연히 보게된 ‘남자’라는 책을 통해서 나는 역시 남자이며 남자이기 때문에 영구 구제불능이라는 사실도 확인하는 한편, 나같은 5척 단신의 존재도 한낱 ‘남자’라는 이름으로 470여쪽이나 되는 분량 만큼의 해부가 가능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했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여자를 무시하거나 가볍게 취급하는건 아니다. 단지 나는 선진화되었다는 독일 유럽에도 우리와 비슷한 남존여비사상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새삼 느낄수 있었다. 이 책은 정녕 ‘남자’의 정체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종교문제 성문제, 결혼을 해서 여자와 더불어 사는 문제, 뿐만 아니라 유럽의 정신사나 고대신화 등을 통해서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남자들이 어차피 견디어 내야 하는 매너나 성별에 의한 각종 기이한 역할과 통제 불능의 섹스, 내면 세계에 대한 두려움, 쌍둥이를 닮은 사랑과 갈등, 심지어는 패거리 정치, 축구 그리고 길거리의 소음, 무식하게 마시는 남자들의 술까지 종횡무진으로 해부해 나간다.
문제는 해부의 내용과 스피드와 초반부터 엇갈리는 남녀의 애정 쌍곡선과 사소한 시시비비로 연애감정이나 결혼의 꿈같은 생활을 순식간에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끝낸다.
따라서 이 책은 오해의 소지가 매우 크다. 자칫 잘못 읽거나 잘못 해석하면 어떤 남자건 사랑이나 결혼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게 상책이라는 엉뚱한 결론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특유의 독일식 해학과 자로 잰듯한 논리로 괴상한 종족인 ‘남자’가 저지를 수 있는 각종 시행착오들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도록 꼼꼼하게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약간의 참을성을 발휘해서 읽어 나가면 사랑의 어떤 치명적인 딜레마에 빠진 사람도 털고 일어서서 새 길을 가도록 안내해 준다. 가령 나같이 사랑과 결혼에 두 번씩이나 실패한 남자도 이 책을 읽고 나선 “그렇다면 한번만 더”를 외치게 된다는 이야기다.
조영남(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