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여야 녹음테이프 공방 가열]'알짜' 없는 녹음테이프인가

  • 입력 2002년 4월 22일 18시 12분


미래도시환경대표 최규선(崔圭善)씨가 한나라당 윤여준(尹汝雋) 의원을 통해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에게 거액을 제공했다는 민주당 설훈(薛勳) 의원의 폭로가 정가에 일파만파의 파장을 일으키고 있으나 진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녹음테이프 있나 없나〓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테이프 내용은 최씨가 윤 의원에게 ‘미국가실 때 여비로 쓰십시오’라고 말하는 대목과 윤 의원이 ‘고맙다’고 치사하는 대목이 들어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테이프에는 ‘2억5000만원’이라는 액수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설사 테이프가 있다 하더라도 액수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을 경우 조작시비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 민주당 측의 고민이다. 또 설 의원이 당초 그 내용을 직접 들은 것처럼 말했다가 21일 “직접 들은 바는 없다”고 한 발 물러선 것도 의구심을 낳고 있다.

▽타이밍 조절인가〓설 의원이 녹음테이프와 증인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는데도 민주당의 기류는 여전히 자신감에 넘쳐 있어 의아심을 자아낸다.

정균환(鄭均桓) 원내총무는 “증거가 없이 폭로를 하겠느냐”고 말했고 다른 관계자도 “기다려 봐라. 이번 주까지만 공개하면 될 것 아니냐”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 때문에 당내 일각에서는 설 의원이 한나라당의 반응을 보아가며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하려는 목표 아래 ‘속도 조절’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반면 저질러놓은 일인 만큼 일단은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의도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아무튼 계속 증거제시를 늦출 경우엔 엄청난 역풍이 예상된다는 점에서 민주당 측의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제보자와 그 출처〓설 의원이 확보한 제보자 두 사람(A, B)은 모두 최규선씨의 핵심 측근으로 A가 테이프를 소지한 B를 설 의원에게 연결시켜 주었다는 게 설 의원 측의 설명이다. 다만 A는 테이프는 갖고 있지 않지만 내용을 직접 들었고 증언에도 적극적인 반면 테이프를 소지한 B는 신변에 불리한 영향이 미칠까봐 심리적으로 위축돼 있다는 것. B의 경우는 최씨의 자금을 관리해 온 인물로 증언내용이 확실하다는 것이 민주당 측의 주장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측은 정보 출처가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청와대 등 권력기관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설 의원이 증인확보에 자신감을 보였다가 한 발 물러선 점 등 갈팡질팡하는 것은 권력기관으로부터 정보를 얻었으나 미처 소화하지 못한 채 발표한 증거라는 것이 한나라당 측의 분석이다.

실제로 설 의원이 자신이 폭로한 이 전 총재의 ‘빌라게이트’나 최씨 관련 의혹을 집요하게 추적한 흔적은 어느 곳에서도 감지되지 않아 당정의 ‘협조 작품’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한나라당 반발〓윤 의원이 ‘조건부 의원 사직서’까지 제출했는데도 설 의원이 상응한 증거제시를 못하자 한나라당 측은 당초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폭로를 했거나 증거를 조작하려는 시간벌기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재오(李在五) 총무는 “설 의원이 청와대나 국정원, 검찰 등으로부터 ‘최씨가 윤 의원을 통해 이 전 총재에게 접근하려 했고 실제로 윤 의원과 몇 차례 만났다’는 정보만 듣고 마치 돈 거래까지 있었던 것처럼 무리하게 확대 포장해 폭로한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도 “최씨가 나를 만나면서 녹음을 했을 수도 있지만 녹음테이프가 공개되더라도 돈 문제는 물론 껄끄러울 만한 대화가 오간 적이 전혀 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박관용(朴寬用) 총재권한대행은 “만일 윤 의원의 말이 거짓이라면 당에서 즉각 퇴출시킬 것이고 마찬가지로 설 의원이 거짓말을 한다면 정계를 떠나야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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