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3승무패 괴물신인 김진우

  • 입력 2002년 4월 22일 18시 06분



‘초고교급 투수’란 말은 아무에게나 붙여주지 않는다. ‘노는 물이 다르다’는 얘기.

하지만 아마시절 ‘초고교급 투수’란 평가를 받은 유망주 가운데 프로에서도 성공을 거둔 선수가 얼마나 될까. 그만큼 아마와 프로의 벽은 두껍다. 그런 면에서 기아 김진우(19)의 올 시즌 성공은 놀랍다. 3경기에 나가 3승무패(공동 1위)에 평균자책 0.40(2위)과 탈삼진 23개(3위). 역대 프로야구 고졸신인투수가 데뷔 3경기에서 3승을 챙긴 사례는 한번도 없었다.

그라운드에 새 바람을 몰고 온 김진우를 18일 대전에서 만났다.

▽열심히 해서 꼭 좋은 선수 되거라〓그의 야구인생을 바꿔준 말이다. 8년 전인 1994년. 광주무등경기장을 방문한 초등학교 5학년짜리 소년야구선수에게 한 프로야구 스타가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를 해줬다. 이 소년은 날마다 그 스타를 머릿속에 떠올렸고 ‘나도 저 선수처럼 되고 말겠다’는 꿈을 키웠다. 소년은 바로 김진우였고 그 스타는 선동렬이었다. 이제 김진우는 ‘제2의 선동렬’로 통한다.

▽아! 어머니〓김진우는 잘 웃지 않는다. 항상 눈가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오죽하면 기아 정재공 단장이 “진우야. 네가 한번 웃을 때마다 만원씩 줄게”라고 약속을 했을까. 그의 웃음이 사라진 건 지난해 11월부터다.

“계약금으로 받은 7억원으로 부모님이 광주시내에 4층짜리 빌딩을 하나 지으셨어요. 건물이 다 완공될 즈음, 부모님이 하루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새벽에 빌딩 옥상으로 올라가셨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지셨어요. 어머니(오남미·47)가 그 사고로 돌아가셨죠. 일본 오키나와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화연락이 와서 급히 저녁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왔죠. 한데 병원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입원실이 아니라 영안실로 데려가는 거예요. 이후로 만사가 재미없어졌어요.”

▽프로야구는?〓김진우는 “프로가 아마보다 쉬운 면도 있다”고 했다. 아마처럼 알루미늄 방망이가 아닌 나무배트를 쓰기 때문. 프로선수들이 실투는 안놓치지만 방망이에서 나오는 파워는 아마 때보다 떨어진다고. 그는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자신감을 갖고 등판한다. 오늘 진다해도 다음 번엔 이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던진다”며 호기 있게 말한다. 정말 ‘겁없는 신인’답다.

그의 프로생활에서 가장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은 룸메이트인 최상덕. 최상덕이 등판하는 날이면 기록원석엔 항상 김진우가 앉아 꼼꼼하게 기록을 한다. “야구나 인간적인 면에서 정말 존경하는 선배”라고. 공교롭게도 둘은 나란히 3승으로 다승 공동선두에 올라 있다.

김진우는 욕심이 많다. 신인왕, 15승투수, 2∼3년 안에 최다승, 국가대표, 7년 후 메이저리그 진출…. 그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갈 작정이다. “이제부턴 제2의 선동렬이 아닌 그냥 김진우로 불러달라”고 했다.

대전〓김상수기자 ssoo@donga.com

▼선동렬이 본 김진우

“한마디로 모든 걸 갖춘 선수다. 체력, 구위, 마운드에서의 배짱 등 투수로서의 조건은 다 갖추고 있다. 하와이 전지훈련에선 힘으로만 던진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정규시즌에 보니까 투구밸런스도 더 좋아졌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문제다. 투수는 잘 나갈 때도 있지만 아깝게 질 때도 많다. 난 데뷔전에서 졌다. 안 좋을 때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본인의 마음자세에 달렸다. 지금에 만족해선 안되고 항상 관리하고 노력해야 한다. 피칭할 때 하반신을 더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진우가 본 선동렬

“멋있고 야구 잘하고 볼도 빠르다. 정말 본받고 싶은 선배였다. 야구 외적인 면에서도 존경스러운 점이 많다고 들었다. 어려서부터 나의 우상이었다. 초등학교 때 우연히 만나서 격려를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만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내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기아에 와서 선동렬 선배의 등번호인 18번을 달고 싶었는데 안돼서 아쉬웠다. 하지만 등번호에 집착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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