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그때 그이야기]4회 브라질대회 <하>

  • 입력 2002년 4월 14일 17시 49분


제4회 브라질월드컵 결승전이 벌어지기 직전의 마라카냥 스타디움.
제4회 브라질월드컵 결승전이 벌어지기 직전의 마라카냥 스타디움.
제4회 브라질월드컵은 숱한 이야기거리를 몰고왔다. 우선 12년만에 재개된 월드컵이라는 점에서 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월드컵이 다시 열림으로써 세계가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브라질월드컵의 개막과 함께 지구 반대편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됐다. 대회 개막 일시는 1950년 6월24일 오후 4시. 브라질의 24일 오후 4시는 한국에서는 25일 오전 4시. 한국전쟁이 터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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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월드컵의 결승전에 벌어진 마라카냥스타디움도 화제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브라질은 월드컵을 치르기 위해 세계 최대의 축구 경기장을 리우 데 자네이루에 건설했다. 관중 2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마라카냥스타디움은 브라질 국민들의 축구 열정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브라질과 우루과이의 결승전에서는 공식 집계된 유료 관중만 19만9844명이 몰려들었다. 무료 관중까지 합하면 23만명은 족히 몰렸을 것이라는 게 당시의 추측이었다.

브라질월드컵에는 인도 프랑스 스코틀랜드 터키 아르헨티나 등이 갖가지 이유를 들어 출전을 포기했다. 인도는 맨발로 경기를 하겠다고 주장했으나 국제축구연맹(FIFA)이 이를 불허하자 불참했다. 프랑스와 아르헨티나는 자국 경기는 리우에만 배정하고 나머지 팀들은 대륙의 끝과 끝을 오가는 일정을 짠 브라질축구협회가 너무 권위적이라는 이유를 대며 참가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로서는 예선에서 잉글랜드에 이어 2위에 머문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한 국가에서 2개팀이 출전하는 것은 낭비라며 출전하지 않았다.

이렇듯 우여곡절 끝에 개막한 브라질월드컵에서 ‘미국팀의 돌풍’은 대회 최대의 이변이자 국제적인 해프닝으로 이어졌다. 축구 종주국을 자처하던 잉글랜드가 약체 미국에 0-1로 덜미를 잡힌 것. 경기에 앞서 도박사들은 500대1로 잉글랜드의 승리를 점쳤지만 이 예상은 미국 골키퍼 보르기의 선방으로 여지없이 뒤집히고 말았다. 잉글랜드는 이 패배의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음 경기에서 스페인에 0-1로 패해 결승리그 진출이 좌절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후 각국 언론의 보도. 이 소식이 타전되자 일부 영국 신문들은 미국 1, 잉글랜드 0의 결과를 믿지 못하고 오히려 1-0 승리로 뒤집어 보도했다. 미국에서도 결과를 믿지 못했던 것은 마찬가지. 뉴욕 타임즈는 미국의 1-0 승리를 오히려 잉글랜드의 10-0 승리로 고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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