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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4월 12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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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땅이 이렇게 평온해 보일 수 있을까. 뉴질랜드 남섬의 관광도시 와나카에서 자동차로 비포장 도로를 20분 이상 달려가면 나오는 아스파이어링 목장. ‘남반구의 알프스(Southern Alps)’로 불리는 산맥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 곳은 빙하 덮인 산, 맑은 냇물, 울창한 숲, 풀을 뜯는 양떼가 어우러져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낙원처럼 보인다. 그러나 와나카 지역은 뉴질랜드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인간에 의해 자연이 무분별하게 파괴된 아픈 과거를 지닌 곳이다. 인근 루프타강(江)에서 급류타기 가이드를 하는 핀(Finn)씨는 “와나카 주변의 초원은 원래 울창한 숲이었지만 유럽계 이주민들이 돈벌이가 되는 목축업을 하기 위해 19세기 중엽부터 멀쩡한 숲에 불을 질러 목장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입업연구소에서 근무하다 최근 은퇴한 홍성옥 박사는 “과거엔 남섬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새로 생겨난 목장 주변에서 불에 탄 나무가 뿌리를 드러낸 채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목장만들기 열풍의 결과로 뉴질랜드에선 초지가 전국토의 절반을 차지한다. 반면 ‘자연의 나라’라는 별명과는 달리 나무 덮인 산과 숲은 국토의 25%에 그치고 있다.
뉴질랜드 농무성 케빈 스틸씨는 “‘무인도’였던 뉴질랜드는 마오리족이 첫 발을 딛은 12세기만해도 국토의 95%가 극상(極相)을 이룬 나무로 뒤덮여 있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는 사람의 발길이 닿은 이후 끝임없는 훼손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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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보다 큰 국토를 불과 인구 300만명이 200년만에 망쳐놓았다는 것을 뒤늦게 통감한 탓일까. 뉴질랜드 정부는 70년대에 들어서야 강력한 통제정책을 실시했다. 불을 놓거나, 나무를 잘라내 인위적으로 목장을 만드는 것을 전면 금지시켰다. 기존 목장에서도 10년 이상 자란 나무를 세 그루 이상 베어내려면 지방 정부의 서면허가를 받도록 했다.
해발고도 800m 지대인 아스파이어링 목장의 주인은 존 아스피날씨(50)와 동갑나기 부인. 아스피날씨는 1920년대 영국에서 정착한 할아버지 때부터 3대째 같은 땅에서 살고 있는 이 고장의 터주대감이다. 그는 “목장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개발됐다”며 “어렸을 땐 나무를 잘라내 헛간도 지었지만, 이제는 따져봐야 할 것이 너무 많아 환경 담당관에게 전화로 묻고 한다”고 말했다.
목장을 중심으로 한 환경보존을 위해 정부는 50년대 이후 상당수의 목장을 국유화했다. 아스피날씨 부부가 양 4500마리, 소 1150마리를 키우는 이 농장도 정부로부터 33년 계약으로 임대받은 것이다.그러나 가로-세로가 각각 10km나 되는 정사각형 크기지만 임대료는 연간 480만원에 불과하다.
농무성의 스틸씨는 “목축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농장주들이 목축을 포기하기 시작하자,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로선 목장포기가 삼림 황폐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목장주변엔 뉴질랜드 송(松), 향나무, 롬바르디 포플러, 너도밤나무 숲들이 언제 ‘아픈 과거’가 있었냐는 듯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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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계절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양몰이’ 날을 맞아 ‘옆 집’에 사는 데이비드 커모드군(17)이 일손이 돕기 위해 아스피날씨를 찾아왔다. 옆 집이라지만 산줄기를 따라 7,8km는 내려가야 할 정도로 와나카 지역은 민가가 뜸하다.
가을로 접어드는 3월말 데이비드의 하루 일과는 도시민 못지 않게 분주하다. 오전 6시에 일어나면 겨울철 양들에게 먹일 건초 만들기, 전기철망 살피기, 정원 가꾸기, 방풍림 다듬기, 트럭 손보기가 그를 기다린다. 이런 가운데 1년에 한 두 차례 지방 정부가 보내는 환경보호 매뉴얼은 그가 환경을 이해하는 농부로 커가는덴 교과서 역할을 한다. 그는 “굉장히 전문적인 부분까지 설명된 것이지만 그림이 충분히 곁들여져 있어서 농부들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뒤늦은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섬 최대도시인 크라이스트처치 외곽 지역의 목장지대는 ‘불을 놓아 목장을 만든’ 후유증을 극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뉴질랜드에 거주했던 충북대 구창덕 교수(산림학)은 “목장지를 만든 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크라이스트처치 시내의 리칼톤 부시(bush)같은 원래 상태로 식생을 회복하기엔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정부로서도 엄청난 비용을 쏟아붓지 않고서는 다른 대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결국 자연의 노여움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들은 기다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와나카(뉴질랜드)〓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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