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오규원 사단'의 글모음 '문학을 꿈꾸는 시절'

  • 입력 2002년 3월 1일 17시 53분


문학을 꿈꾸는 시절/ 신경숙 외 지음/ 세계사 320쪽 8500원

시인 오규원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의 회갑을 맞아 서울예대 제자 문인 46명이 쓴 에세이를 묶었다. 저마다 ‘문청’(문학청년) 시절의 에피소드 및 ‘오규원 교수님’과 관련한 추억담을 개성있는 글발로 표현해 ‘조각이불’처럼 사뭇 아기자기하다.

시인 박형준은 ‘날카로운 안경 안쪽에 자상함을 숨겨두었던’ 스승의 세심한 권고를 기억해낸다. 어느 해 신춘문예 마감일이 가까워오자 스승 댁에 시를 보여드리러 갔다. 시인은 “자네 시는 200자 원고지보다 400자 원고지에 정서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조언했다는 것. 시가 긴 탓도 있지만 섬세한 탓에 한눈에 들어오는 400자 원고지가 유리하겠다고 판단한 것이지만, ‘다시 정서한다는 것이 끔찍했던’ 제자는 그대로 시를 투고했고 그해 낙방했다.

시인이자 방송작가인 전연옥은 학창시절 강의실과 술자리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1학년생 낙상사고’를 추억으로 떠올린다. 자취방 난간에서 일을 보다 1층으로 떨어져 중상을 입었는데, 선생은 “떨어지는 순간 동안 바지 지퍼를 다 올리느라 더 심하게 다쳤다니 선배된 도리로서 수술비에 십시일반 해라”라며 알쏭달쏭(?) 한 이유를 들어 가난한 후배를 도왔던 것. ‘살아난’ 후배는 1991년 유명 문학상을 받아 ‘지퍼 보은’을 했다는 사실도 썼다.

소설가 신경숙은 20년전 스승이 맺어주었던 한 우정을 기억해낸다. 말수도 사교성도 없던 한 동급생이 어느날 ‘나하고 얘기 좀 할 수 있겠어요?’라며 메모지를 주고 갔다는 것. 워낙 신씨도 주변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스타일이라, 스승이 ‘친구해보라’고 권고했다는 것이다. 바쁜 사회생활속에서 연락이 끊어진 친구에의 추억 끝에, ‘그런데? 20년 전 선생은 내 나이셨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시인의 제자들은 최근 ‘문학을 꿈꾸는 시절’ 출간에 맞춰 출판기념회를 겸한 스승의 회갑연을 열었다. 시인의 생일은 음력 12월 29일. 올해는 양력으로 2월 10일이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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