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재철/FTA, 특별법 만들자

  • 입력 2002년 2월 24일 18시 22분


김재철 / 한국무역협회장
김재철 / 한국무역협회장
제2차 세계대전 후 50년 동안 세계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7배 증가한 반면 교역량은 17배 늘어났다. 세계 각국이 너나없이 수출이 살길이라며 수출증대에 주력해온 결과다. 특히 최근의 세계시장은 수출하려는 상품이 넘쳐나면서 국가간 경쟁이 극도로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지구촌 곳곳에선 지리적으로 인접한 나라간에 경제통합을 이루거나 인접국가가 아니더라도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자국의 수출을 확대하는 한편 통상이익을 늘리는 사례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현재 발효중인 FTA만 해도 162개에 이르고 있으며 협상이 진행중인 FTA 또한 수십개를 헤아린다. 유럽연합(EU)과 멕시코의 경우는 각각 30개 이상의 협정을 체결해 경제적 혜택을 누리고 있는 반해 우리나라는 단 한 건의 FTA도 맺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이다.

▼FTA 뒤질땐 수출 불이익▼

지역주의의 요체는 세계무역기구(WTO)를 주축으로 하는 다자주의의 규범을 벗어나 상호 교역에 걸림돌이 되는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줄이는 특혜를 주고받는 것이다. 그런 만큼 역외국은 차별대우라는 상대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며, 지역주의의 확산은 곧 우리나라 상품이 수출시장에서 감수해야 할 불이익이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무역통계를 보면 EU의 경우 경제통합이 심화되면서 역내국간 수출비중이 이미 63.5%(2000년 기준)에 이르렀다. 북미지역 역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출범이후 역내 수출이 확대되면서 그 비중이 1990년 40.6%에서 2000년 54.1%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판단되는 우리 제품이 해외시장에 첫발조차 들여놓지 못하는 사례가 앞으로 더욱 잦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최근 국내에서 FTA에 대한 논의가 전례 없이 활발해지고 있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FTA 논의는 아직 총론수준에 그치고 있어 이를 본 궤도로 끌어올리기 위한 각계의 노력이 한층 강화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FTA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첫째, 정부가 FTA 추진에 관한 정책의지를 보다 선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FTA의 추진은 대외적으로 협상을 해야 하고 대내적으로는 이해당사자를 설득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만큼 정부가 먼저 기본방향과 목표를 설정하고 치밀한 준비와 여론 조성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FTA 추진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범정부 차원의 전담기구를 설치하는 등 추진체계를 가다듬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산업계, 학계를 비롯한 각계의 의견을 고루 수렴해야 하며 FTA 전문가를 보다 많이 배출하기 위한 정부와 민간의 노력도 요망된다.

둘째, 농산물 개방에 대한 다각적인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한-칠레 FTA 협상이 교착국면으로 접어든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농산물 개방을 도외시한 FTA 체결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크지 않다. 농산물 개방은 FTA 추진에 있어 가장 큰 과제라는 점에서 농정당국이 대상 국별 우선순위 선택을 비롯한 FTA 전략 수립에 처음부터 적극 참여해야 한다.

농정당국은 특히 FTA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해 농산물 개방 유보조치는 국내 농가에 광범위한 피해를 끼칠 우려가 높은 일부 품목에 한정시킨다는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 수입증가가 크지 않은 농산물까지 개방을 유보하려 한다면 이는 부분적인 이익을 위해 전체 국익을 희생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정부-산업계 손잡고 준비를▼

마지막으로 FTA 추진 지지그룹으로서 산업계의 역할도 강화돼야 할 것 같다. 미국의 경우 주요기업의 최고경영자로 구성된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RT)’을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미 정부와 의회에 FTA 체결의 확대를 적극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미국이 NAFTA에 이어 이스라엘, 요르단, 칠레,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으로 FTA 대상국가를 늘리는 추진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산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무역의존도는 73%로 세계적으로 유난히 높다. 이를 감안할 때 범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지역주의 흐름에서 우리는 이미 크게 뒤져 있다. 또 세계경제의 대세는 우리가 못 본 체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며 우리가 이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느냐에 우리 수출의 증대, 나아가 우리 경제의 미래가 달렸다. FTA에 대한 보다 진지한 대책 마련과 추진이 매우 중요한 때이다.

김재철 한국무역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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