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도서]대국 향했던 20C 일본 '일본의 근대 사상'

  • 입력 2002년 2월 22일 17시 58분


◇ 일본의 근대사상 /가노 마나사오 지음 이와나미 신서,2002년

이 책의 저자 가노 마사나오는 일본 근대사상사의 일인자다. 그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역사를 민중, 마이너리티, 그리고 주변에서 바라보려고 한 역사가다. 이 책의 제목은 ‘일본의 근대사상’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근대사상’이란 ‘근대화’를 추진했던 사상도, ‘근대’라는 시대를 주도해 왔던 대사상가들의 사상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기성제품 같은 ‘근대’의 밀어부침에 안간힘을 다해 저항하며, 스스로의 주체성을 확립하려고 몸부림쳤던 사람들의 사상적 발자취를 말한다. 여느 사상사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학자, 지식인, 작가 등도 있지만, 그들 못지 않게 이 책은 생활인으로서 삶을 영위해 가면서 스스로의 사상을 갈고 닦아 갔던 사람들의 목소리도 중시한다.

가노에 의하면, 20세기의 일본은 두 가지 의미의 대국으로 돌진해 갔는데, 그 전반부가 군사대국의 길이라면, 그 후반부가 경제대국의 길이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같은 역사를 짊어지고, 또 그때그때 상황과 격투하면서 사람들은 어떤 사상과 경험들을 쌓아 갈 수 있었는지, 세기가 변하는 시점에 서서, 과거와 현재를 대면시켜 가면서, 그 목소리를 알아 듣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노는 군사적이든 경제적이든 ‘대국’을 향했던 20세기 일본이 그 보상으로 잃고 만 것, 억압해 왔던 것에 줄곧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쉽게 ‘과거의 청산’을 도모하려는 경향에는 가차없는 비판을 던진다. ‘과거가 그렇게 편의에 맞게 청산할 수 있는 것일까. 과거의 극복은 스스로 짊어져야 할 유산으로, 그것은 과거를 직시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가노는 일본, 마이너리티, 일상성, 인류라는 네 개의 주제로 요약했다.

이 주제들이 서로 엉키고 합류하면서 일본론, 민주주의, 전쟁과 평화, 오키나와·재일 조선인, 여성의 물음, 일상적 삶의 사상, 사회주의라는 경험, 핵 시대의 사상, 생명의 현재 등 아홉 갈래의 장(章)이 생긴다.

가노는 이전에 ‘근대일본사상 안내’라는 시대순으로 서술된 간결한 사상사를 내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저자의 붓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있다. 어떤 제재가 언급되면 곧 그것과 메아리치는 제재가 등장해, 전체로서 느슨하게 연결된 상(像)이 묘사된다.

예를 들면 제1장 ‘일본론’에서는 먼저 20세기초의 제국주의적인 ‘팽창적인 일본론’이 언급된다. 이어서 당시 일본의 동향에 위구심을 품었던 해외 지식인, 쇼와(昭和) 초기의 마르크스주의자 토사카 준(戶坂潤)의 논설 ‘일본 이데올로기’, 시인 하기와라 사쿠타로 (萩原朔太郞)의 ‘일본에로의 회귀’, 비평가 가토 슈이치(加藤周一)의 ‘잡종 문화론’, 일본을 환태평양의 섬들과 연결시키는 시마오 토시오의 ‘야포네시아론’, 소설가 이노우에(井上) 히사시의 ‘고쿠고(國語)’를 비판한 작품, 자명한 것으로 여겨져온 ‘일본’상(像)을 박진감 넘치게 재검토한역사가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 등의 업적을 두루 소개하고 있다.

이연숙 히토츠바시대 교수 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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