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 열린마음 열린세상]외국인노동자에 떡국…

  • 입력 2002년 2월 6일 18시 41분


네팔에서 열린 가족 아카데미 행사는 내겐 참으로 신비스럽고 인상적이었다. 특히 현지 안내원 쿠룽의 재치 있는 유머는 피곤한 여정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는 불법 체류까지 합쳐 한국에서 6년 간 근로자 생활을 했었다. 그걸 계기로 한국말을 배워 안내원을 하게 되었으니 자기로선 큰 행운을 잡은 셈이다.

▼중노동-産災에 反韓인사돼▼

고생이 많았지, 돈은 많이 벌었느냐. 네팔보다 그의 한국 인상이 더 궁금했다. “약속한 대로 월급만 다 나왔어도 부자가 될 수 있었는데….” 아쉬운 표정은 잠시, 그는 특유의 기지를 발휘해 버스 안을 온통 폭소의 도가니로 만들곤 한다. 왜 고생이 없었겠어. 한국말만 들어도 진저리가 난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천성이 밝아서일까, 그에겐 그런 어두운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면 종교적 심성 때문일까. 누굴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후유! 난 조마조마한 가슴을 쓸어 내렸다. 다행이다. 그리 나쁜 인상이 아니었다니 고맙기도 하고.

하지만 다음 순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렇게 자위하고 있는 내 자신이 얼마나 낯뜨거운 짓을 하고 있는지 얼굴이 달아올랐다. 부끄럽고 미안했다.

신문엔 요즈음도 외국 근로자의 딱한 사연들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임금 체불, 착취, 인간 이하의 대접, 심지어 때리기까지 한다니. 산업 재해에도 속수무책, 어디에 하소연할 데도 없다.

누구나 기피하는 3D업종, 그 열악한 환경에서 중노동을 하고 있다. 이들 덕분에 그래도 수출 시장이 이 만큼이나 돌아가고 있는데.

이들의 딱한 사연을 듣노라면 마음이 아프다. 큰 죄나 지은 듯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 네팔인 쿠룽의 넓은 도량이 그래서 더욱 고맙고 인상적이다. 이제 곧 설이 온다니 쿠룽의 설날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장 가족이 모두 설쇠러 고향에 내려가고 공장엔 외국 근로자 몇 명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산골이라 근처 식당도 없고 꼬박 닷새를 라면만으로 때웠더니 창자까지 꼬여버렸는지 변도 안 나오더란 것이다.

쿠룽도 그렇지만 한국에 올 정도면 그 나라에선 괜찮은 집의 젊은이들이다. 한국에서의 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 이들이 갖는 한국에의 인상은 어떠할까. 생각할수록 끔찍하다.

미워하고 싫어하고 철저한 혐한(嫌韓) 반한(反韓) 인사가 되어 돌아갈 것을 생각해 보자는 거다. 이들 나라와도 교역을 해 먹고 살아야 할텐데.

한때 일본을 경제동물이니 하면서 온 세계가 규탄하던 때가 있었다. 상품 불매 운동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요 몇 년 사이 그런 말은 들어볼 수 없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못 사는 나라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그 나라 젊은이를 초청, 학교도 보내고 기술 훈련도 시키는 등 친일 인사로 만들어 돌려보냈다.

그뿐인가. 얼마 전 일본 규슈에서 열린 다문화정신의학회에서 놀라운 보고를 접하게 되었다.

대도시는 물론이고 산간 마을까지 국제 문화교류센터가 설치되어 외국문화 이해를 위한 교류도 활발하고 외국인이 일본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상담 프로까지 개설해 놓고 있다. 이보다 더 효과적인 외교도 없을 것이다. 이들이 돌아가 일본 세일즈맨이 될 테니 상술로선 아주 고급 상술이다. 멋진 미래 투자다.

나도 미국 유학 시절, 고마운 미국 가정이 호스트가 되어 주었다. 명절 때 함께 지내는 건 물론, 처음 온 외국 생활에 적응하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그때 맺어진 인연은 지금까지도 소중히 이어져 오고 있다.

▼외국인에 응접실을 열자▼

지난 여름엔 그 집의 두 아이가 한국의 우리 아이 집에서 한여름을 보냈다. 그 곳 신문에 국경을 초월해 두 세대에 걸친 친교라는 제하에 양가의 인연을 감동적으로 다룬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내겐 보은의 뜻도 있다. 한국에서 국제학회가 열리면 우리 집은 외국 손님으로 넘쳐난다. 학문적 교류는 물론이고 그 끈끈한 인간 관계는 돌아간 후에도 국제 무대에서 나의, 그리고 한국의 적극적인 지지자 및 후원자가 되어준다.

월드컵 만인가, 요즈음엔 외국 유학생도 많다. 응접실을 열어 호스트가 되어 보라. 그보다 더 좋은 친교가 없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이다. 이게 세계화의 첫 걸음이다. 그리고 잊지 말자. 외국 근로자, 낯선 타국에서, 아직도 20대의 철부지들이다. 설날 아침 이웃에게 떡국 한 그릇의 인정을 잊지 말자!

이시형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