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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월 31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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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9개월 만에 물러나기는 했지만 다나카 마키코 전 외상도 대단한 인물이다. 일본 최고의 총리로 평가받는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외동딸이라는 출신배경부터 일류다. 3선 의원에 과학기술청장관, 그리고 여성으로는 최초로 외상까지 지냈으니 이제는 아버지보다 더 유명하다고 할 만하다. 다나카씨도 ‘거물의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외상 자리를 스스로 지망했다. 취임 후에는 “이제 총리 자리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평까지 나와 그녀를 흡족하게 했다고 한다.
▷거물 외상 다나카씨는 짧은 재임기간에 더욱 유명해졌다. “주부라서 밤에는 나갈 수 없다”며 심지어 총리가 주최하는 외국 국빈을 위한 만찬에도 참석하지 않고, 외무성 인사과장의 경질을 요구하며 문을 걸어 잠근 채 농성을 하는 등 그녀의 독설과 기행(奇行)은 일본뿐만 아니라 외국언론의 가십난까지 수시로 장식했다. 경질되기 며칠 전에는 사이가 좋지 않던 외무성 사무차관과 의사당에서 논쟁을 벌인 뒤 기자들에게 해명을 하다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의 눈물을 놓고 “눈물은 여자의 무기”라고 촌평을 했던 총리가 공식해명을 해야 할 정도로 또다시 거센 논쟁이 촉발됐으니 첫 여성 외상의 유작(遺作)이라고 할 만하다.
▷다나카씨의 외상 기용은 전형적인 논공행상(論功行賞) 인사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집권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그녀에게 장관이라는 선물을 안긴 것이다. 그러나 다나카씨의 연이은 실수를 견디다 못해 중도에 경질하고 말았으니 고이즈미 총리 스스로 패착을 시인한 셈이 됐다. 비록 다나카씨의 인기가 여전하다 해도 그동안 일본 외교는 혼선을 빚었다. 외국인들까지 웃게 만들던 다나카씨가 ‘대중적 인기에 영합한 논공행상이 부족한 자질을 메울 수는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한다면 지나친 독설일까.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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