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형택씨 혼자 한 일인가

  • 입력 2002년 1월 24일 18시 29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李亨澤)씨가 주도한 보물발굴 사업을 위해 현역 장군이 해군참모총장을 찾아가 장비 및 병력지원을 요청했다는 사실은 대통령 친인척이 국가기관을 사유물처럼 이용하려 했다는 발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기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이것이 이씨 혼자만의 발상인지, 아니면 배후에 있는 누군가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를 먼저 밝혀내야 한다.

국방부측에선 당시 국가정보원 국방보좌관으로 파견돼 있던 한모 소장이 “민원해소 차원에서 해군총장을 만난 것”이라고 변호했지만, 이씨가 대통령 처조카가 아니었더라도 그처럼 적극적으로 나섰겠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수용(李秀勇) 당시 해군총장은 “국정원 관계자들을 만난 뒤 장비 및 병력지원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없으며 현장답사나 대책회의도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국방부측은 또 군장비는 긴급구조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민지원을 못하게 돼 있으며, 해군 관례상 수온이 15도 이하일 때에는 해상훈련을 하지 않는데 당시 수온은 8도였다는 점 등을 들어 해군의 지원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정도 설명만으로 해군측이 이씨의 청탁을 끝까지 거부했다고는 믿기 어렵다. 이씨는 해군총장이 지원 요청을 거절한 뒤에도 계룡대를 방문해 오승렬(吳承烈) 당시 정보작전참모부장을 만났고, 오 제독의 안내로 이 총장을 다시 만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개 금융당국 간부에 불과한 이씨가 정보기관과 경찰 등 국가권력기관을 마음대로 활용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마당에 당시 해군 수뇌부가 이씨의 집요한 로비를 물리치고 끝까지 원칙을 지켜냈는지 추후 철저한 조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

이씨의 로비 행각에 온갖 국가기관이 연루된 것이 밝혀지고 있으나 군조직은 이런 부정비리의 사슬에서 멀찌감치 비켜나 있어야 한다. 군은 국민이 마지막으로 믿고 의지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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