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2년 1월 22일 18시 3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바다 건너 이웃인 미국과의 애증관계도 끊임없이 쿠바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쿠바 망명자들을 동원해 카스트로 타도에 나섰던 1961년의 피그만 침공,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을 벌일 뻔했던 1962년의 미사일 위기는 당시 제3세계를 겨냥한 공산주의 혁명기지였던 쿠바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준 역사적 사건들이다. 재작년 쿠바의 여섯살짜리 소년 엘리안 곤살레스가 엄마와 함께 망명을 시도하다 익사 직전 구조된 사건도 두 나라 사이가 아니라면 그토록 떠들썩한 뉴스가 될 수 없었다.
▷이번에는 미국이 쿠바 땅에 갖고 있는 관타나모 기지가 주인공이다. 쿠바 수도 아바나로부터 1000㎞ 떨어진 관타나모만에 위치한 이 기지는 미국이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 중 점령한 곳이다. 미국은 1903년 매년 금화 2000개(당시 가치 약 4085달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이곳을 쿠바로부터 빌려 지금까지 99년째 군기지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이 여기에 생포한 아프가니스탄의 알 카에다와 탈레반 요원 수백명을 수용하면서 포로대우 방식이 도마에 올라 기지가 뉴스의 초점이 됐다.
▷계기는 며칠 전 미 국방부가 공개한 아프가니스탄 포로 사진이다. 국방부가 어떤 생각으로 포로들이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수용소에 검은 테이프가 붙여진 고글과 귀마개 마스크 등으로 얼굴이 덮이고 손과 발은 체인으로 묶인 채 꿇어앉아 있는 장면을 공개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포로들의 모습이 워낙 비참해 영국 정부와 미 적십자사가 조사단을 현지에 보내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 아바나의 단골 레스토랑 ‘엘 플로리디타’에서 말년의 대작 ‘노인과 바다’를 구상했던 미국의 노벨상 수상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살아있다면 ‘포로와 관타나모’를 쓰겠다고 나서지 않았을까.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