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보기 안쓰러운 ‘경의선 기대’

  • 입력 2002년 1월 18일 18시 19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엊그제 “북한이 공사용 막사를 수리하는 등 경의선 철도를 연결할 조짐이 보인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이 그동안 남북관계 현안에 북측이 더 적극 나서줄 것을 고대해 온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확실치도 않은 ‘조짐’을 놓고 서둘러 공개한 것은 아무래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경의선이 복원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바라고 있는 일이다. 이 사업은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천명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상징일 뿐만 아니라 정치·군사적으로도 획기적인 의미를 지니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남북 당국이 경의선 복원에 합의한 2000년 7월 이후 남측은 이미 공사를 끝마쳐 놓은 데 비해 북측은 공사를 거의 진척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측은 특히 작년 5월 군부대 병력과 장비를 공사 현장에서 철수시킨 이래 최근까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경의선 복원 문제는 전적으로 북측의 의지에 달려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남측으로선 지금까지 북측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북측이 공사 현장의 군부대 막사를 보수 증축하고 있다는 이번 보고만 해도 국방부와 통일부의 ‘해석’에 다소간 차이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마당에 김 대통령이 분명하지도 않은 북측의 작은 움직임을 놓고 기대감부터 표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국민이 보기에 마치 우리 정부가 북측의 손짓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제5차 장관급회담을 앞둔 작년 9월에도 “이번엔 경의선 문제가 반드시 합의될 것이며 기차를 타고 평양에 갈 날이 내일 모레”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그 때의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대통령의 지나친 기대감 표명은 남북 협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남측이 성과에 집착하는 것처럼 비쳐짐으로써 북측이 억지 주장을 고집하는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이 정권이 주도한 몇 차례 남북 협상에서 그런 현상을 경험한 바 있다.

남북 화해협력 사업은 남북 양측이 스스로 필요성을 느낄 때에 탄탄한 기반 위에서 진전될 수 있으며 어느 한쪽이 서두른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경의선 복원사업도 마찬가지다. 남측의 철도 복원 구간이 완성돼 있는 지금 상황에선 북측이 자발적으로 나올 때까지 차분하게 지켜보는 것이 옳다. 급한 쪽은 결국 북측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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