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맘만 먹으면 혼자서도 주가조작"

  • 입력 2002년 1월 3일 17시 58분


주식시장이 연말 랠리에 대한 기대로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40대 중반의 박모씨가 주가조작 혐의로 금융감독원에 적발됐다.

박씨가 친구와 조카까지 끌어들여 주가를 조작해 올린 시세 차익은 무려 73억원. 조사 결과 박씨는 98년에도 주가조작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큰손’의 전유물이었던 ‘작전’이 일반인에게도 확산되고 있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9월에는 주가조작을 일삼던 데이트레이더 10명이 한꺼번에 검찰에 구속됐다. 이 가운데는 대학생도 포함돼 충격을 줬다. 이처럼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작전을 벌일 수 있는 게 한국 증시의 현주소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세계 증시 건전성 순위에서 한국 증시는 47개 조사 대상 증시 가운데 39위에 머물렀다. 멕시코 인도 헝가리 같은 나라들보다도 순위가 낮았다. 2000년의 정현준 진승현씨 주가조작 사건, 지난해 이용호씨가 연관된 ‘보물선 파동’ 등 주식시장을 뒤흔드는 대형 사건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서는 이런 평가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불공정 거래는 양적으로도 증가하는 추세. 금감원에 따르면 99년 189건, 2000년 274건이던 불공정거래 조사건수가 지난해에는 411건으로 늘어났다.

불공정 거래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데는 감시 인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점이 첫번째 이유로 꼽힌다. 금감원의 공시 담당자 한 명이 연간 1500건의 공시를 점검해야 하는 현실이 한 예다. ‘협상중’ ‘추진중’ 등 주가를 띄우기 위한 공시가 남발되지만 진위를 일일이 가려내기는 역부족이다.

증권연구원 노희진(盧熙振) 연구위원은 “불공정 거래가 적발되더라도 처벌까지 6개월 이상 걸리는 절차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증권거래소와 금감원 조사를 거쳐 검찰이 위법성 여부를 가려낼 때쯤이면 이미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해를 본 뒤라는 것. 전문가들은 “증권거래소나 증권업협회 차원에서 가할 수 있는 징계 수위를 높이고 금감원의 조사 권한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불공정 행위를 하는 기업이나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과 퇴출을 강화하는 것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주가 조작범이 집행유예로 쉽게 풀려나는 현재의 법 적용으로는 작전에 대한 유혹을 단절시키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미국에서는 주가 조작에 연루된 기업이나 관련자에게는 천문학적인 벌금을 매기고 다시는 시장에 발을 붙일 수 없도록 엄격하게 법을 적용한다.금동근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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