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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28일 2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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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서가 일반인의 고급 교양서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한 가지 불만이 있다면 과도한 편식이다. 관련서 중 태반이 고흐나 피카소고, 대부분이 회화에 치우쳐 있다. 현대미술에서 빙산의 일각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소장 미술사학자(숙명여대 미술대학 교수)가 공들여 내놓은 이 책은 작가 편중과 장르 편식을 피한 점에서 우선 눈길을 끈다. 조각이나 건축 등 타 장르와 교접하며 심리학이나 수학 등 타 학문과 영향을 주고 받는 현대회화의 복잡다단한 양상에 눈을 맞추고 있다. 미술 교과서로 익숙한 마네나 모네의 그림을 설명하면서 상류층 살롱(salon) 문화의 역사적 맥락에 주목한다.
다소 딱딱한 필체에다 페이지마다 출몰하는 낯선 이름들로 인해 초심자에게 부담스러울 법하다. 그러나 크레모니니의 정신분석학적 회화의 전말이나 장 드완의 기하추상이 어떻게 수학이론을 미학으로 승화시켰는지를 다른 책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트로바, 파올로치, 킨홀츠, 조지 시걸, 브루스 레이 등 우리에게는 생소한 조각가들이 인간 소외를 표현하기 위해 시도한 색다른 방식을 접할 수도 있다.
회화나 조각의 경계를 뛰어넘어 ‘테크놀로지 미술’의 기원이 된 프랑스의 오토마타(움직이는 기계 인형)와 사이버네틱 미술 역시 진미를 맛볼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제3장 ‘미술품이 된 건축과 도시’. 프랑스 건축가 니콜라 쉐퍼가 1969년 발표한 이상도시 ‘사이버네틱 도시(La Ville Cybern´etique)’ 건설 계획(1969)이 어떻게 과학기술을 접착재로 삼아 회화 조각 건축을 도시라는 개념으로 확장 통합시키려했는지 소상하게 보여준다.
또한 70년대 말까지 ‘콘크리트의 폐허’로 불리던 파리 근교 도시 라데팡스가 장르의 경계를 초월한 현대미술의 총아를 상징하는 거대 작품으로 화려하게 변신하면서 세계의 명소가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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