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한국경제 명암]수출부진 '탄식' 신용회복 '안도'

  • 입력 2001년 12월 25일 18시 12분


‘반도체 가격 하락과 자동차 수출 호조’ ‘지옥과 천당을 넘나든 주식시장’ ‘저금리시대의 도래와 부동산 분양열기의 폭발’.

2001년 한국 경제는 어느 해 못지 않게 명(明)과 암(暗)이 뚜렷하게 엇갈렸다. 경기침체와 수출감소에 한숨짓다가 중국열풍과 주가상승에 들떴고 불황의 터널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암담해하면서도 경기회복 시기에 대한 정부 당국자들의 전망에 한 가닥 기대를 걸기도 했다.

공적자금을 둘러싼 공방이 끊이지 않는 와중에도 금융권에서는 국민-주택은행의 합병을 비롯해 ‘짝짓기’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경기침체와 맞물려 규제완화를 요구하는 재계의 목소리가 커졌고 ‘현금중시 내실경영’은 올해 기업경영의 화두로 자리잡았다.

▽그림자-반도체값 폭락으로 수출타격 등〓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경기침체는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인 수출에 직격타를 날렸다. 수출은 3월부터 11월까지 9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거듭했다. 올 들어 11월까지의 수출액은 1388억45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7% 줄었다.

수출 격감의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주력상품인 반도체가격이 폭락했기 때문. 99년 10월 한때 32.8달러에 거래됐던 128메가 D램의 현물가격은 올 10월에 1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채권단의 자금지원으로 정상화를 시도하던 하이닉스반도체가 또 한번 큰 타격을 받았고 세계 최고의 원가경쟁력을 갖춘 삼성전자도 3·4분기(7∼9월) 중 반도체부문에서 적자를 내는 수모를 겪었다. 연말에 접어들면서 반도체값이 상승세로 돌아선 점이 그나마 위안거리.

수출부진과 경기침체는 기업들의 일자리 공급을 줄여 사상 최악의 대졸 취업난으로 이어졌다. 신규 구직자가 43만명이나 된 반면 일자리는 6만개에 그쳐 웬만한 기업의 입사 경쟁률이 100 대 1을 훌쩍 뛰어넘었다.

공적자금을 둘러싼 공방도 뜨거웠다. 감사원의 특별감사결과 부실기업주와 부실금융기관의 임직원들이 7조원의 재산을 숨긴 것으로 밝혀지자 공적자금의 관리책임을 추궁하는 여론이 높아졌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공적자금에 따른 국민부담을 139조원으로 추산하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정부와 재계의 신경전으로까지 번졌다.

▽빛-외환위기 졸업과 중국열풍 등〓자동차는 반도체의 부진을 만회하면서 올해 한국 경제의 추락을 막은 효자업종으로 각광받았다. 올해 한국의 자동차 수출대수는 158만대로 작년보다 5.7% 줄었지만 중대형차와 다목적차량(RV)이 미국 등에서 인기를 끌면서 금액은 작년보다 5%가량 늘었다. 자동차 수출의 호조는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분가 경영’에 나선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차 회장의 위상을 한껏 높였다.

‘롤러코스터’ 주가는 수많은 개미투자자를 울리고 웃겼다. 미국 테러사태가 발생한 지 4일만에 종합주가지수가 13.3%, 코스닥지수는 무려 25.5%나 급락했다. 그러나 약 3개월 후인 12월 13일에는 연중 최저점대비 코스닥은 63.5%, 거래소는 45.4%가 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조기에 졸업해 외환위기의 망령에서 벗어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 외환보유액이 사상 처음 1000억달러를 넘어서면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도 한 단계 상승했다.

13억 인구의 중국이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면서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의 중국 방문이 러시를 이뤘다. 기업들은 중국을 제2의 승부처로 삼아 중국진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대우자동차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의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해결의 가닥을 잡은 것도 올해 한국 경제가 악전고투하면서 거둔 수확 중 하나로 꼽힌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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