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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7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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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게 마무리되던 올해 문단에서 화제작으로 꼽힐 만한 작품집이 나왔다. 1995년 ‘살아 있는 죽은 여인’으로 데뷔한 작가 최재경(30)은 첫 단편집에서 독특한 작품의 파노라마를 펼친다.
표제작 ‘숨쉬는 새우깡’은 제목만큼이나 발랄한 상상력의 일단을 보여준다. 30년전 새우깡을 개발하다 죽은 남자 영혼이 여자 주인공 영지의 몸에 담겨 기억을 회복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 남자가 죽은 해 태어나 새우깡을 먹으면서 자란 시간을 작가가 살아온 햇수와 겹쳐놓는 재기가 돋보인다. 그 배경에 유신체제의 삼엄한 정치상황도 유머러스하게 겹쳐 놓은 것이 묘한 울림을 준다.
작품 곳곳에서 작가는 “삶에는 그것 말고도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라는 식의 기대감을 늦추지 않는다. 그녀가 포착한 비루한 삶의 행태는 왜곡됐으나 그것을 다루는 방식마저 그로테스크한 것은 아니다. 시종일관 웃음을 머금게 하는 힘은 작품의 두드러진 매력이다.
다른 신세대 작가와 구별되는 이같은 ‘뼈 있는 재기’는 이것만이 아니다. 남자의 매춘이 단순히 “자신을 파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 또한 즐긴다는 의미에서 “구매권을 판매하는 행위”임을 날카롭게 포착한 단편 ‘구매를 판매합니다’는 그런 점에서 주목된다.
여기 실린 작품 8편 중 여러 작품이 ‘가정 비극의 세계’(문학평론가 이인화)를 담고 있지만 그 방식에서는 어느 하나로 규정될 수 없는 자유로움이 있다. 한쪽 끝에는 새우깡으로 대표되는 일상의 자잘한 세태가 있다면, 반대편에는 성서와 신화 등에 끌어온 묵직한 모티브가 있다. 가령 ‘발의 꿈’에서는 창세기에서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동침한 롯과 두 딸의 이야기를 빌어왔다.
최씨의 이력을 보면 만능으로 불릴만큼 다채롭다. 본격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그 안에서 갇혀 있지 않았다. 최리라라는 필명으로 그룹 O15B의 노래 가사를 쓰기도 했고, 기획취재 기사를 쓰는 프리랜서 작가로 활약했다. 인터넷 서점과 웹진 등에서 서평을 쓰는 자유 기고가이자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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