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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1월 26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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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싱가포르의 총리였던 리콴유(李光耀)의 고백이 떠오른다. “나는 이제까지 네 나라의 국가(國歌)를 부르며 살아야 했다. 영국의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 일본의 ‘기미가요’, 말레이시아의 ‘나의 나라’, 그리고 싱가포르의 ‘싱가포르여 전진하라’이다.”
이것이 싱가포르의 20세기 역사다.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일본군에 점령당한다. 그리고 63년 말레이시아의 한 연방이 되었다. 먹고 살아갈 길이 그 길뿐이라 해서 자청한 짓이다. 그렇게 걸레처럼 당하고 찢기고 짓밟히고 구걸하던 나라는 마침내 65년 싱가포르라는 이름으로 독립했다.
▼박정희 현판 제거 유감▼
그리고 리콴유의 지도로 오늘의 성취를 이루었다. 부잣집 아들 리콴유는 ‘제국’영국에 건너가 명문대학교를 다녔다. 독립운동가가 아니었다. 나라 운영도 체통이나 정기(正氣)와는 거리가 먼 짓이 많았다. 말레이시어를 공용어 국어로 택하자고 한 것도 리콴유였고 나중에 경제 통상외교를 위해 다시 영어를 공용화 국어화 한 것도 리콴유였다.
실용성과 경쟁력만이 삶과 국가운영의 기준이었다. 마침내 오늘날 싱가포르는 국제경쟁력 선두 그룹, 세계 기업인들이 장사하고 싶어하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나라, 국민소득 톱클래스의 나라가 되었다. 아무도 싱가포르의 너덜거리는 20세기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다. 오늘의 눈부신 발전과 작은 몸집에서 우러나는 탄탄한 경쟁력을 부러워하고 두려워 할 뿐이다.‘거적때기 할아버지, 비단옷 자손’의 나라가 된 것이다.
박정희 현판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그의 비민주적 정치 행태와 인권탄압에는 나도 할말이 많다. 그리고 민족정기 소생회의 올곧은 정신을 훼손할 의도도 없다. 다면 이런 반문은 해볼 필요가 있다. 망한 나라의 백성이 점령국의 군인 ‘다카키 마사오’가 된 것은 유독 그만의 배반인가? 그러한 도덕적 흠이 영원히 씻길 수 없는 죄악인가? 이 나라 대통령으로서의 18년 공과(功過)는 이제 우리 모두의 삶과 역사에 스며들지 않았는가? 그 현판을 써 붙인지도 수십년 아닌가? 다른 망국 매국 친일인사는 제대로 죗값을 치렀는가?
과거 청산이나 민족정기 회복이 국가의 미래를 열어가고 민족의 단합을 꾀하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짓밟히고 멸하지 않는 역사를 가꾸는 것이 목표일 것이다. 그렇다면 청산행위가 자칫 분열 이전투구로 치닫고 우리의 잠재력과 경쟁력을 잠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이치는 정당의 경쟁, 정치인들의 경합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싸우더라도 국익 공익이 앞서야 하고 내홍 자멸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실제로 이긴 것은 앨 고어라는 조사결과가 보름 전에 나왔다. 문제가 된 플로리다주 전체를 검표했더라면 당락이 뒤집혔으리라는 것이 미국 언론사컨소시엄의 추적조사 결과다. 그러나 억울하게 진 고어의 답변은 간단했다. “선거는 이미 끝났다. 우리에겐 더 중요한 목표가 있으며 이를 위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한다.”
▼과거엔 엄격 미래엔 소홀▼
한국에서 그런 가능성이 제기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 공신력 있는 추계가 아니라도, 선거를 치르고 나서 원천무효 백지화 투쟁으로 지새는 것을 수없이 보아 왔으니까. 승자도 패자도 관용과 여유가 없는, 그래서 각박하고 살벌한 투쟁으로 지고 새는 게 우리 정치다.
리콴유가 저서(일류국가의 길)에 그런 한국 정치문화를 걱정한 대목이 있다. “전통적으로 끝까지 투쟁만 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 같은 데서는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 민주주의는 (선거로) 정권을 잡은 측의 권리를 패배한 측이 받아들이는 것이며 진 쪽이 다음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 참을성 있게 평화적으로 노력하는 풍토에서만 기능을 다한다.”
하나의 가설이지만, 우리가 너무 캐고 싸운다는 충고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작은 것, 과거지사에 너무 매달린다. 그만큼 큰 것, 더 필요하고 절박한 오늘과 미래에 소홀하다.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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