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쟁점토론]건강보험 재정분리

  • 입력 2001년 11월 2일 18시 24분


《내년 1월로 다가온 건강보험 재정통합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이 영구 재정분리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건강보험 재정통합 문제에 대한 논란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보험재정 통합을 백지화하자는 측은 지역의보 자영업자의 소득파악을 위한 부과체계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재정통합을 추진할 경우 건강보험 재정적자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경실련 참여연대 등 ‘국민건강권 확보를 위한 범국민연대’ 측은 재정분리는 조직의 분리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4년 가까이 여야합의로 통합을 추진해온 국가적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

▼찬성/"검증안된 통합강행 재정파탄 불러"▼

보험재정은 당연히 분리돼야 한다. 보험재정이 완전하게 통합되면 소득을 기준으로 단일한 보험료 부과 기준이 설정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 점을 뒤늦게 깨닫고 있지만 드러내놓고 주장할 입장은 아닐 것이다. 정부도 내심 재정분리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의료보험에 있어서 분리(자치)냐, 통합이냐 하는 문제는 보험운영시스템의 구성에 관한 것이다. 자치운영시스템의 경우 직장가입자는 사업장별 노사간 합의로, 지역가입자는 지역별 주민대표의 합의를 통해 각각 자치적으로 보험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반면 의료보험통합이란 노사간, 또는 지역별 자치운영시스템을 해체하고 전 국민에 대한 보험을 정부(공단)에서 운영하는 체제다.

의료보험이 조세부과 방식과 다른 점은 비용부담자인 보험가입자가 보험료 부과 등 보험운영에 참여해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의료보험을 사회보험이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보험의 본질을 도외시하고 실제적으로 검증되지도 않은 의보통합을 강행했기 때문에 보험재정이 파탄지경에 이르게 됐다. 지역가입자의 소득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단에서 가입자의 나이, 성별, 재산을 기준으로 소득을 추정해 획일적으로 보험료를 산정해 일괄적으로 부과했기 때문에 보험료가 각자의 실소득에 부합되지 않고 형평성도 없어 보험료 당기 징수율이 20% 이상 급락했다.

게다가 보험료 인상이 전국단위 문제로 확산되고 정치적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됨으로써 의료비 증가에 따른 보험료 조정을 적기에 할 수 없게 되었다. 아울러 보험재정 운용에 주인의식이 사라지고 불필요한 진료행위가 남용되어 의료비 지출이 과거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특히 1996년 의료보험 통합법안이 제출되어 통합이 가시화되자 보험운영에 도덕적 해이현상이 만연했고 보험재정 보호에 대한 책임의식도 약화되었다.

이 같은 요인으로 인해 96년도에 897억원의 적자가 발생한 것을 시작으로 지역의보가 통합된 98년에는 적자규모가 6400억원으로 늘어났다. 의보통합 3년 만에 4조원에 이르던 적립금도 모조리 소진되고 금년에는 4조20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의료보험 재정이 만성적 적자구조로 바뀌고 파탄지경에 이른 것은 의료보험을 통합함으로써 제도의 자생력이 상실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보험재정을 분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회보험의 근본정신을 살려 시스템을 완전히 다시 짜야 한다.

잘못된 정책으로 의료보험 재정이 파탄돼 보게 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정부 여당이 개혁이라는 명분에 집착해 문제투성이인 제도를 고집하지 말고 새판을 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종대(복지문제연구소장 경산대 객원교수)

▼반대/"의료보장 형평위해 통합 꼭 필요"▼

지난해 통합체제인 ‘국민건강보험법’이 적용되기 이전에는 의료보험 제도가 360개가 넘는 조합들로 나뉘어 운영되었다. 국민으로서는 소득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사는 지역과 속한 직장에 따라 보험료가 달리 부과되었으며, 수많은 관리기구를 통해 운영비가 효율적으로 통제되지 못하는 불합리를 감수해야 했다. 또한 보험료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입자인 국민이 정부와 공단을 상대로 협상력을 발휘할 수도 없었다.

통합 의료보험 체제는 분명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일대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은 관리조직의 통합에 이어 재정의 통합, 보험료 부과체계의 통합이라는 수순을 밟아 완성되어야 진정 그 목적이 달성된다. 현재 재정통합을 앞둔 시점에서 이를 뒤집는 것은 그동안 진행되어온 관리조직 통합 비용을 헛되게 만든다는 것 외에도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점을 던져준다.

첫째, 재정분리가 된다면 직장인들의 보험료는 당장 대폭 상승되어야 한다. 그동안 직장의료보험 조합 쪽에서는 통합을 앞두고 남아 있던 적립금 2조5000억원을 모두 소진하는 과정에서 보험료율을 적절히 인상하지 않았다. 이는 올해처럼 급여비 폭증 현상이 온 상황에서 약 3조원 정도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내년에 37.5% 정도의 의료보험료 상승요인으로 작용한다.

둘째, 재정분리는 효과적인 국고지원의 길을 막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지역의료보험 재정의 30% 수준을 지원해왔고 올 4월의 재정위기를 겪은 후 이를 50% 수준으로 확보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통합을 앞두고 지역재정과 직장재정을 장부상으로만 구분하고 있지 실제로는 이미 통합 관리하는 체제로 돌입했다는 점, 그간 지역에 속해 있던 5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이 직장으로 돌아선 점 등을 생각한다면 재정분리는 국고지원금이 직장과 지역 어느 쪽의 적자에 대해서도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게 한다.

셋째, 재정분리는 소득부과 체계를 단일화해 명실상부한 형평성이 담보된 의료보장 체계로 나가는 길을 스스로 포기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다. 재정분리는 직장가입자가 지역가입자를 위해 손해볼 수 없다는 ‘이기주의적’ 발상에 묶여 진정 견실한 건강보험제도를 확보하는 길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이는 실제 직장가입자에게도 유리한 방법이 아니다. 지역가입자는 소득 파악률은 떨어지지만 재산 및 가구원, 경제활동 참가율, 심지어 자동차보유를 통해서 부담능력이 가려지고 있다. 그러나 직장가입자는 오로지 근로소득에 대해서만 부과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재정분리는 동일한 능력에 동일한 보험료가 부과되면서 건강하지 못했을 때 응분의 서비스를 받는다는 의료보험 제도의 기본원리를 포기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걸림돌인 자영업자 소득 파악률을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이태수(꽃동네 현도사회 복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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