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호섭/日 해외파병 막을 수 없다면

  • 입력 2001년 10월 21일 18시 48분


일본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자위대를 해외에 파병하게 되었다. 미국의 동시 다발 테러피해 이후 테러조직의 응징을 위해 국제사회가 공동행동을 규합하는 움직임에 일본도 적극적으로 지지를 표명한 바 있다. 이제 자위대를 파견해 미군의 군사작전을 돕는 후방지원을 하겠다는 선언을 행동에 옮기고 있다.

▼건설적인 대안제시 어려워▼

일본 중의원에서 18일 ‘테러 대책지원 법안’이 가결되었으며 이달 하순 참의원에서 통과되면 법률로 성립될 예정이다. 이 법안에서는 자위대의 후방지원 내용으로 미군에 대한 보급, 수송, 의료지원 및 난민 구제를 규정했다. 자위대의 활동영역도 넓어져 공해상이나 당사국 동의를 전제로 전투행위가 벌어지지 않는 외국영토에서의 활동도 가능하게 되었다. 자위대의 파병은 11월로 예상되며 파견 규모와 장비에 관해서는 미일간 협의가 진행 중이다.

이러한 자위대의 파병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헌법이 금지한다고 해석되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또한 아시아 주변국가들에는 과거 일본 군국주의에 의한 피해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다.

일본 자위대가 해외에 파병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며 냉전 종결 이후 유엔의 평화유지활동(PKO)에 참가한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 경우는 참가 조건이 제한되어 있었다. 어디까지나 유엔 깃발 아래서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가해 일본에는 지휘통제권이 없었으며 전투행위가 종료된 지역에서 피해복구와 난민구제 등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으로 제한되었다.

이번의 자위대 해외파병도 전투행위에는 참가하지 않으나 일본 국기를 내세우며 인도양에서 스스로의 지휘 하에서 미군에 대한 후방지원 군사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말 그대로 일본 깃발을 내걸고 국제공헌을 하게 된 것이다.

국제공헌에 대한 일본의 적극적 참여는 미국의 세계전략 전개에 중요한 요소이다. 냉전 종결 이후 미국은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략의 중요 요소로 삼고 있으며 일본의 보다 적극적인 안보태세를 원하고 있다. 특히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미일동맹을 영미동맹과 같은 수준으로 운영하며 미일동맹을 중심으로 아시아 전략을 수행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세계전략 속에서 일본 국내 보수세력의 정치적 발언공간은 확대되고 있다. 이들 보수세력은 전쟁과 패전의 경험을 실제로 겪지 않은 비교적 젊은 세대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우익 정치이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국익을 새롭게 해석하려고 한다. 즉 일본은 국제사회로부터 국제평화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공헌을 요구받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 세력은 91년 말 걸프전쟁에서 일본이 130억달러에 이르는 전쟁비용을 지출했으나 인적 공헌이 부족하다고 국제사회로부터 비난받은 것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세계의 주요국가인 일본이 더 이상 경제적 수단만을 사용하는데 그쳐서는 안되며 평화가 교란된 지역에는 자위대를 파병해서라도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해 국제사회에서 신뢰받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위대 활동 사후검증 철저히▼

일본의 새로운 보수세력은 국제공헌에 발목을 잡는 국내 제도는 재정비되어야 하며 주변국가로부터 제기되는 군국주의 우려에 대해서는 법률 제정의 과정과 내용을 투명하게 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냉전 종식과 함께 경제대국으로서 일본의 국가지위 상승이라는 국내외적 환경변화에 대응해 국내 정치체제를 정비하려고 한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평화헌법의 개정까지를 포함한다.

우리로서는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에 반대만 할 수 없다. 일본의 자원이 필요하다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자위대의 해외파병에 대한 사전 차단적인 반대가 지금까지 우리의 대응이었다면 이런 현실상황 하에서 앞으로는 자위대 활동의 사후검증식 평가가 더욱 중요할 것이다. 일본 스스로의 헌법과 법률 하에서 일본이 국제평화에 실제로 공헌하는가를 지켜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호섭 (중앙대·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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