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정부, 손실보전펀드에 '이중잣대' 적용

  • 입력 2001년 10월 10일 18시 53분


정부와 여당이 장기 주식투자를 유도한다며 만들려고 하는 손실보전펀드(가칭)는 정부가 스스로 세운 원칙에 어긋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경기악화 등을 이유로 응급 증시처방을 내놓고 있으나 대부분은 과거 관치 시절 주로 써먹던 낡은 수법들로 자본시장 선진화 과정에서 없어진 제도들이다.

▽투자 손실은 투자자가 져야〓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에 실적배당상품에 가입해 입은 손실은 투자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대우그룹 관련 채권 편입 등에 따른 손실을 보전해 주다가 투신권의 동반부실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펀드를 판매할 때 ‘이익도 손실도 모두 투자자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반드시 알리도록 했다. 펀드에 관한 광고나 설명서를 만들 때도 이 문구를 붉은색으로 굵게 표시하도록 지침까지 마련했다.(표 참조)

이런 정부가 세금환급을 통해 투자 손실을 보전해주는 펀드를 만들려는 것은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셈.

한 투신운용사 관계자는 “이런 펀드는 투자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던 시절에 일부 민간 투신사에서 시도한 적이 있다”며 “정부가 만들려는 새 펀드상품은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투자 손실이 날 때 정부가 소득세 감면 등의 방법으로 손해를 보전해준다면 이익이 날 경우에는 세율을 더 높여야 옳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되고 민간은 안된다〓금융감독원은 최근 씨티은행이 원금보전형 펀드를 추가로 신청하자 불허했다. 펀드가 투자하는 채권이 부도가 날 경우 은행이 투자자에게 대지급하는 대목을 문제삼았다. 주은투신운용이 내놓은 펀드도 투자채권에 지급보증을 붙이려 했으나 역시 퇴짜를 맞았다.

두 펀드는 모두 원금의 대부분으로 우량채권을 할인매입해 만기 때 원금이 되도록 하는 구조였다.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도록 여기에 지급보증을 추가하려는 것이었다. 금감원은 “실적배당상품에 지급보증을 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고 인가하지 않았다.

투신권 관계자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정부는 해도 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진기자>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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