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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9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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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 일대에서는 예로부터 청어가 많이 잡혔다고 한다. 별다른 저장방법이 없던 시절, 동지가 가까워지면 먹고 남은 청어가 집집마다 부엌 봉창에 내걸렸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꽁꽁 얼었다가 밥짓는 온기로 살짝 녹기를 보름가량 되풀이하면 살이 쫀득쫀득해지고 배의 기름이 고루 퍼져 고소한 맛이 나는데 이것을 과메기라고 했다. 아궁이 솔잎 타는 연기까지 배어 은은한 뒷맛이 일품이었다고 하니 서양의 ‘훈제연어’가 부럽지 않았던 셈이다.
▷과메기는 본래 관목어(貫目魚)라고 불렀다. 청어를 바닷물에 잘 씻은 뒤 싸리나무 가지로 눈을 꿰어 여러 마리씩 엮어 말린 데서 나온 이름이다. 영일만 근처는 겨울철 밤낮의 일교차가 큰 데다 건조한 바람이 분다. 경북에서도 구룡포 과메기를 최고로 친 것은 이 같은 기후 덕분이었다. 구룡포 앞바다에서 청어가 사라진 1960년대부터는 대신 꽁치를 말리는데 고소하기가 청어보다 더하다고 한다. 또 아궁이가 사라지면서 부엌 봉창 대신 바닷가에 아예 과메기 덕장이 섰다.
▷전과는 달리 지금은 전국 어디서든 과메기를 맛볼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한두 곳씩 생기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겨울 별미’를 내건 전문점이 수두룩하다. 한겨울보다는 맛이 떨어지는 게 흠이지만 진공포장으로 사시사철 즐길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런 차에 남쿠릴 해역에서 우리 꽁치잡이를 규제한다는 말이 들린다. 일본과 러시아가 제3국의 조업을 금지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에 꽁치 값이 치솟고 구룡포 과메기 업계도 울상이라고 한다. 과메기도 과메기지만 주부들 시름도 클 것 같다. 얄팍한 월급봉투에 그나마 꽁치가 서민의 만만한 반찬거리였으니까.
<최화경논설위원>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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