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재미없는 K-리그에 대한 편견

  • 입력 2001년 9월 28일 12시 01분


K-리그는 재미가 없다는 사람이 많다.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는 제쳐 두고라도 우리 대표팀의 주요 스타들 대부분이 해외에서 뛰기 때문에 볼만한 선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라데나 사리체프(신의손이 되기 이전)처럼 확고부동한 용병 스타도 없다. ‘97년의 고종수, ‘98년의 이동국이나 안정환 같은 화려한 신인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차범근 같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고수도 지금으로선 없다.

팀들은 또 어떤가? 나머지 모든 팀에 비해 탁월한 전력과 팬을 가진 팀이 보이지 않는다. 소위 ‘수퍼 클럽’이 없다는 말이다. 몇 년 전, 전국의 그저 그런 팬들까지도 무조건 수원 삼성이 최강이라고 생각하던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틀리다. 더구나 ‘전통의 강호’ 내지는 ‘영원한 우승후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팀들도 지금은 그저 고만고만한 수준이 되었다. 우리에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바이에른 뮌헨 같은 팀이 없으니…

그리고… 언제나 지적되는 문제들이 있다. 너무 거칠다, 재미가 없다, 승패에만 집착한다, 골이 좀처럼 터지지 않고 무승부 경기가 너무 많다, 심판이 경기를 망가뜨릴 때가 많다, 구단의 팬 서비스와 마케팅 전략이 수준 이하다, 선수와 구단의 프로의식과 팬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다… 등등.

모두 맞는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는 문제이다. 또한 K-리그에서 뛰는 선수와 지도자, K-리그를 운영하는 프로연맹 아자씨들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 깨나 한다고 들었다. 무승부 없애기 위해 연장전에 승부차기까지 도입하기도 했고 플레이 오프라는 기발한(?) 아이디어까지 도입했다. 외국인 심판도 써 봤고 심판들 해외 연수까지 시켜줬다. (아마도 이러한 노력은 대한민국에서 축구가 사라지지 않는 계속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과연 한국 프로축구가 재미 없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위의 이유들 때문일까? K-리그가 재미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한 K-리그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이 그저 무엇인가에 몰두하고 집착하는 소수의 ‘K-리그 매니아’이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분명히 주변에서 만나는 K-리그의 팬들은 그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으며 그런 재미를 나누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처음 K-리그에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의 반응 중에는 “어? 축구 보는 사람들이 꽤 되네?” “생각보다 재미있네?”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역시 재미 없다니깐!” “저걸 축구라고 하나?”하는 식의 비판적인 사람들도 있다. 물론 후자가 많다. 대개의 사람들은 투박한 K-리그 경기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서 몇 가지 팬들의 편견을 지적하고자 한다.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경기장에 오기 전부터 이미 ‘한국 프로 축구는 문제 투성이다’라는 담을 어느 정도 쌓은 상태에서 오기 때문이다.

먼저 ‘관중이 없다’는 편견을 깨야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경기장을 멀리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소일 것이다. 중계 화면이나 스포츠 뉴스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관중석은 텅 비어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일단 경기장에 가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경기장에 와서 K-리그를 즐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중석이 늘 북적거리지는 않기 때문에 텅 빈 관중석이 더 크게 기억되기도 한다. 하일라이트가 방영될 때는 주로 골이 터지는 모습만 보여주는데, 이 때는 소수의 서포터스만이 있는 골대 뒤쪽이 집중적으로 화면에 나타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차지하는 곳이 본부석이 있는 쪽 스탠드인데, 우습게도 그 쪽에 메인 카메라가 있기 때문에 그 쪽 스탠드는 화면에 나오지 않는다.) 흔히 야구와 비교하기도 하는데, 야구의 시즌 게임 수와 축구를 비교하지 않기 때문에 늘 야구 팬이 축구 팬을 앞선다. 겨울에 농구 경기가 열릴 때 보이는 빽빽한 경기장도 사실상 1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내 체육관이다. 결국 경기당 평균관중 1만 명을 넘어서는 축구 경기에 관중이 없다는 말은 사람들의 편견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주말에 좋은 팀들끼리 펼치는 야간경기는 쉽게 2만 명을 넘어서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골이 터지지 않아서 재미 없다’는 편견도 크다. 신문에서는 늘 예년에 비해 경기당 평균 득점이 어느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관중이 줄었다는 지적을 하지만, 경기당 2.5골과 3골의 차이란 것도 정확히 따져 보면 두 경기에 한 골 정도 더 터지는 수준이다. 더구나 한 경기에서 3골 이상 터지는 경우도 가끔씩 생기는 점을 감안할 때, 평균 득점이 흥행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비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유럽 빅 리그의 경기당 평균 득점도 2.7골에서 3골 수준이다. 특히, 유럽의 경우 상위 팀과 하위 팀 간의 전력차가 우리에 비해 심하기 때문에 가끔씩 무더기 득점이 나온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10개 팀이 리그를 운영하는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팀간 전력차가 적으며 전체 게임수도 적다. 설사 득점력이 낮은, 또는 여전히 문전에서의 마지막 처리가 투박한 선수들의 수준이 문제라면 모를까… 관중이 즐기고 경기 승패를 나눌 만큼의 골은 터지고 있다.

또 하나의 편견은 ‘너무 승부에 집착한다’는 지적이다. 너무 이기는 데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경기가 거칠다고 말하기도 하고 관중을 위한 배려가 약하다고도 한다. 물론 승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팬들로부터 외면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에도 우리의 편견은 있다. 확고한 자신만의 팀을 가지지 않은 절대 다수의 축구 팬들 때문에 생기는 편견이다. 자기 팀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있어서 축구 경기는 양팀 선수들이 펼치는 일종의 ‘쇼’나 ‘엔터테인먼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TV에서 신모 해설위원이 축구를 엔터테인먼트라고 했다. 그의 입장에선 그랬나보다…) 그러나, 프로축구가 어디 엔터테인먼트인가? 적어도 그 팀을 아끼는 고정 팬들에게 있어서 축구 경기는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치열한 승부의 세계이다. 실제로 프로 축구 팀 프런트의 말에 따르면 팀 성적이 관중 수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고 한다. 특히 홈에서의 연패는 관중 동원에 매우 치명적이라고 한다. 또한 이것은 한국 프로축구가 어느 정도 지역 기반의 고정 팬을 확보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기건 지건, 또는 순위가 어떻든 간에 스탠드가 텅텅 비던 시절은 지났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관중 수야 얼마든 간에 그 팀을 지지하는 고정 팬들이 팀 흥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성장한 것이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편견은 ‘승부에 집착하기 때문에 태권 축구와 비열한 빽태클이 난무한다’는 아주 오래된 편견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프로축구 경기는 그런 느낌을 받아 왔다. 언제나 뉴스에서는 그런 면을 부각시켰으며, 그렇기 때문에 팬들은 축구를 외면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월드컵에서 하석주가 빽태클로 퇴장 당했을 때, 한국 선수들의 거칠고 원시적인 경기 스타일을 지적했다. 하지만, 퇴장 당하는 것이 한국 선수만이 아닌데… 거칠기로 따진다면 한국 축구는 너무 얌전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유럽에 비할 바가 못 되는데… 뉴스와 언론은 항상 부각되는 포인트만을 한없이 강조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한국 축구를 태권축구로 깎아 내리고 만 것이다. 오히려 부천의 이임생 선수처럼 반칙을 하더라도 상대 선수에게 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하는 신사적인 수비수의 모습을 언론에서 띄워 줬으면 좋으련만, 사람들의 감정을 끌어내기에는 그의 신사적인 태클보다는 머리를 칭칭 감은 압박붕대가 더 쓸모가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뻥 축구’에 대한 편견이다. 뻥뻥 내지르기 때문에 재미가 없단다. 승부에 집착하기 때문에 뻥뻥 내지르기만 한단다. 수비수도 뻥, 공격수도 뻥… 그러나, K-리그의 어느 팀도 뻥 축구를 하지 않는다. 아니, 세상에 뻥 축구라는 것은 없다. 미드필드에 비해 포워드의 득점력과 1대1 능력이 좋은 팀들은 다른 팀보다 자주 최전방으로 직접 전달되는 롱 패스를 시도할 뿐이다. 더구나, 그런 전술을 주로 사용하는 팀들이 K-리그 10개 팀의 절대다수도 아니다. 미드필드를 탄탄하게 갖춘 수원, 부천, 안양, 성남 같은 팀은 롱패스 보다는 짧고 빠르게 공략해 나가는 스타일이다. 오히려 부천 같은 팀은 너무 잘게 부수고 나간다는 평을 들을 만큼 조직적이고 세밀한 미드필드 플레이를 펼친다. 그러나, 만약 부천이 정상급의 스트라이커를 가졌다면 롱 패스의 빈도는 지금보다 올라갈 것이다.

또한 경기가 막바지에 이르는 상황에서 리드를 잡지 못한 팀은 과감하게 미드필드 플레이를 생략한 채 최전방으로 한 방에 공을 넘겨준다. 정확성은 떨어지지만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모험수를 두는 것이다. 바로 사람들이 뻥 축구라고 말하는 꼴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 순간의 경기는 정말 박진감이 넘친다. 경기는 빠르게 진행되고 양 팀 모두 단순한 공격을 서로 주고받기 때문에 공격 팀과 수비 팀이 빠르게 바뀐다. 오금이 저릴 정도의 짜릿함이 있다. 그것은 뻥 축구나 수비 축구가 아니라, 극단적으로 모험적인 공격 축구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패스의 정확도와 타이밍 등의 기술적인 투박함이 있을 뿐, 한국 축구는 결코 뻥 축구가 아니다.

색안경을 벗고 애정을 가졌으면 좋겠다. 일간지의 축구면을 장식하는 “0대0! 지루한 공방전” “또 무승부” “극심한 골 가뭄” “관중도 외면한다” 등의 타이틀은 우리에게 색안경을 씌우는 주범 중 하나다. 어떻게 그날 경기의 가장 큰 포인트가 관중 수나 골 수가 되는가 말이다. 그것 말고도 진짜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축구 경기 본연의 모습은 모두 가린 채, 마치 사건 보도를 하는 식으로 지면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내용이 고스란히 일반 팬들에게 전달된다. 10년 전의 편견을 다시 끄집어 내고, 맨땅에 먼지 풀풀 날리며 악과 깡으로 뛰던 시절의 한국 축구가 지금의 K-리그 경기로 덧씌워 진다. 재미없는 K-리그로 말이다.

혹시 궁금하지 않던가? 그렇게 형편 없고, 그렇게 볼품 없는 K-리그 출신의 선수들이 J-리그를 활보하기도 하고 국제 경기에서 활약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말이다. 한민족의 타고난 우수성인가? 아니면, 순전히 정신력의 산물인가? 그 답은 K-리그에 있다. 거기에 가면 낯익은 선수들이 있고 그들의 지지자들이 있다. 그리고 축구의 재미가 있다.

마지막 라운드도 서서히 종점을 향해 달리는 K-리그… 여전히 우승 후보를 가리기 힘든 치열한 선두 싸움. 그리고 그 속에서 뛰는 선수와 관중들. 자기 스스로 그 속에 어울리지 못하는 한, 재미 없는 K-리그에 대한 편견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색안경을 벗고 경기장에 가자. 한국 축구를 어루만져 주자.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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