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형근의 음악뒤집기]모던 록의 개척자 델리 스파이스의 ‘D'

  • 입력 2001년 9월 24일 14시 30분


이젠 ‘인디’라는 수식어가 무색한 밴드 '델리 스파이스'. PC 통신을 통해 의기투합, 97년 데뷔 이래 델리 스파이스는 국내 모던 록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다. 90년 록 키드들의 바이블인 얼터너티브의 폭발에 델리 스파이스는 거친 파열음을 거부한 채 깔끔하고 세련된 모던 록으로 음악계의 지각변동을 꿈꾸었다.

델리 스파이스는 깔끔하고 세련된 모던 록의 사운드 위에 냉소적이면서도 섬세한 서정을 혼합해 경쾌하지만 우울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비록 1집의 ‘챠우챠우’ 2집의 ‘종이비행기’등의 곡들이 알려졌다고 해도 앨범 사진만큼이나 대중에게 낯설었으며 간신히 앨범의 손익분기점을 맞추는데 만족해야만 했다. –참고로 델리 스파이스의 1집은 스파게티 그림이었으며, 2집은 어린 소녀의 아련한 사진, 3집은 사막 위에 떠 있는 TV 사진이었다.

자우림은 김윤아의 주술적인 카리스마가 지배, 메인스트림으로 화려한 안착을 하고, 열혈펑크 키드 크라잉 넛은 치기어린 쓰리코드의 펑크 음악으로 언더그라운드를 넘어서는 악동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예에 비추어본다면 평론가들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모던 록의 개척자 델리 스파이스의 성과는 미비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델리 스파이스의 지난 3집 앨범 ‘슬프지만 진실...’은 기존의 미소년적인 서정으로 록 음악에 짙게 배어있는 거칠고 강건한 이미지를 걷어내는데 일조하였고, 서구 모던 록을 그대로 복제하는 수준을 벗어나면서 새로운 록 키드들의 숨은 실력자로 자리 잡게 되었다. 얼마 전 발표된 이들의 네 번째 앨범 ‘D'는 그러한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D’는 모던 록을 통해 '인디' 혹은 '언더'라는 테두리를 넘어서는 음악적 볼륨을 가진 델리 스파이스를 확인할 수 있다. 기존 기타 팝에서부터 스탠다드 팝, 아트록을 아우르는 트랙들 위에 써 내려간 이들의 음악은 여전히 그리움과 두려움, 꿈과 악몽 등이 공존하며 또한 여리고 순수하며 감성적이다.

귀에 감기는 달콤한 멜로디의 경쾌함과 우울함이 교차하는 ‘동병상련’ ‘still falls the rain’은 가장 팬 층이 두터운 곡으로 인디 출신 밴드 델리 스파이스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아기자기함과 신선함, 그리고 사춘기적인 단절감으로 표현되었던 이들의 음악은 여전히 대중들에게 낯설고도 먼 음악적인 텍스쳐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델리 스파이스는 ‘doxer’ ‘낯선 아침’ 등에서 관악기를 사용한 단조 성향의 곡들을 선보이며 또 한번 음악적인 변모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델리 스파이스의 노력은 매 앨범 이어졌던 모던 록 키드들의 찬사를 넘어 대중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에 충분하다.

류형근 <동아닷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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