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태조 왕건' 서인석 "견훤 인기 실감납니다"

  • 입력 2001년 9월 17일 18시 31분


<<“이에는 이, 눈에는 눈!”.

화친을 조건으로 고려에 보냈던 백제의 볼모가 독살당해 돌아오자 후백제의 왕 견훤은 복수심에 가득찬 눈빛으로 이렇게 응징을 선언한다.

KBS 1TV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견훤의 ‘카리스마’가 시청자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태조 왕건’이 TV시청률 1위에 복귀한 것은 견훤 역을 맡은 중견 탤런트 서인석(53)의 뛰어난 연기가 절대적이다. 그는 드라마 속에서 견훤을 ‘부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렬한 눈빛과 엄숙한 목소리로 후백제의 흥망을 그려내고 있는 그에게 ‘비운의 왕’ 견훤과 연극배우 시절,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야심가였던 견훤은 불쌍한 인물?

요즘 드라마 ‘태조 왕건’의 중심 인물은 단연 견훤이다. 고려와의 조물성 전투에서 승리했고 신라도 황궁을 열어놓았다며 견훤의 입성을 부탁한 상황. 비록 극중이긴 해도 견훤은 이번 기회에 후삼국을 평정해버릴 듯 위풍당당한 기세다.

이런 견훤에 대해 서인석은 ‘승자만 기억되는 비정한 역사에서 보기 드문 멋진 인간’이라고 평했다.

“황실의 자식인 궁예가 ‘독설가’라면, 장군 출신의 견훤은 ‘야심가’라 할 수 있어요. 전장을 직접 지휘하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었지요.”

그러나 서인석은 ‘명장’이었던 견훤이 ‘불쌍한 사람’이라고 했다. 강한 나라를 만들었으나 정작 가정을 다스리는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견훤은 불같은 다혈질이면서도 때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여린 면도 있는 이중적 인물입니다. 만약 그가 가정을 잘 다스렸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서인석은 다른 TV드라마 섭외를 거절한 채 오직 ‘태조 왕건’에만 매달리고 있다. 올 연말까지는 오로지 ‘견훤’만을 생각하겠다는 각오다.

이처럼 뜨거운 연기 열정 탓에 그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경기도 남한산성에서 전쟁 장면을 찍다가 오른쪽 목에 불화살이 스치고 지나간 것. 서인석은 끝까지 촬영을 끝내는 투혼을 발휘한 후 병원에서 피부 이식수술을 받았지만 아직도 목에 흉한 상처가 남아 있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영광의 상처’라며 자랑스럽게 흉터를 보여주던 그는 “연기에 열중하다보면 부상의 아픔도 잊게 된다”며 “견훤은 내가 몰랐던 연기 세계를 보강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견훤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들 신검이 반란을 일으키자 왕건에 의탁해 고려의 군대를 이끌고 후백제의 반란군을 제압한다”고 전했다.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

서인석은 ‘태조 왕건’에 출연하면서 새삼 ‘바람직한 지도자 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곤 한다.

“시대극은 시대극일 뿐 정치적인 의미는 없습니다. 하지만 견훤은 싸움터에서 맹장이면서 부하들을 아꼈고, 의리를 중시하며 포용력 있는 지도자였어요. 견훤은 역사의 승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배우는 딴따라여선 안된다?

서울 영등포 토박이인 서인석의 연기 인생은 연극에서 시작했다. 서라벌고 재학시절부터 연극반에서 활동했고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1978년 극단 실험극장이 공연해 화제를 모았던 2인극 ‘아일랜드’로 동아연극상(동아일보 주최)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연극 활동과 함께 탤런트로도 나서 1975년 KBS ‘산비둘기’로 TV에 데뷔했다. 기억에 남는 출연작은 ‘TV 손자병법’ ‘삼국기’ ‘정 때문에’ 등. 80년대 이후에는 연극 활동을 많이 하지 못하고 TV드라마에 주력하고 있다.

서인석은 ‘뚱뚱하면 뚱뚱한 연기밖에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매일 아침 달리기를 거르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밤을 새우며 대본을 외우는 것도 연기에 대한 그의 진지한 자세를 보여준다.

“아마 10년 뒤에는 황혼의 인생을 살아가는 늙은이의 삶을 연기하고 있을 겁니다. 배우는 ‘딴따라’여서는 안됩니다. 자신만의 역사관과 예술세계를 갖고 있어야 해요.”

요즘 드라마에서 견훤이 부각되면서 청소년들에게 팬레터와 사탕을 선물로 받아 기뻤다는 서인석. 그는 “‘태조 왕건’이 끝나면 궁예 역을 맡았던 김영철, 왕건 역의 최수종과 함께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면서 “이 여행을 통해 그동안의 감회를 서로 나눌 생각”이라고 말했다.

<황태훈기자>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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