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뉴스]박찬호는 제2의 페드로 마티네스?

  • 입력 2001년 9월 17일 15시 57분


뜻하지 않은 미국의 '충격 테러'의 여파는 메이저리그에도 영향을 미쳤다. 메이저리그는 시즌 중단이라는 아픔을 맛보아야만 했고 최고조로 뜨거워야 할 시기에 잠시 팬들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잃어버린 5경기는 정규시즌이 10월로 연장되면서 모두 치러지게 된다.

'코리언 특급' 박찬호가 적을 두고 있는 LA 다저스도 충격 테러의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만은 없었다. 혼돈의 내셔널리그 서부 조에 속해있으면서 역사상 가장 뜨거운 지구 선두 다툼이나 와일드카드 경쟁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다저스는 조 선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3게임차,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1.5게임차 뒤져있다. 와일드카드 경쟁에서도 역시 자이언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이은 공동 3위에 랭크되어 있다. 즉, 언제든 조 선두 내지는 와일드카드 수성이라는 '토끼 사냥'에 희망의 불씨를 가지고 있다.

테러가 있기 전, 다저스는 중요한 일전이었던 카디널스에 2연패하면서 잠시 주춤하고 있었다. 한 경기한 경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다저스이기에 부상의 위험을 안고 있는 '승부사' 케빈 브라운까지 가세시키면서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17일(이하 미국시간)부터 재개될 시즌 스케쥴상 상대적으로 좋은 위치를 선점하지 못했다.

힘든 레이스가 불을 보듯 뻔한 다저스이기에, 17일 이후 펼쳐질 마지막 승부수의 시발점이 될 선발투수 로테이션 확정에 누구보다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저 단순한 선발투수 로테이션의 발표라는 의미로 해석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많은 팀들이 3게임차 이내로 뒤엉켜있는 시즌 마지막 뒷심싸움이라는 의미에서 가장 핵심적인 전력의 분배라는 의미가 더욱 강하기 때문이다.

17일 샌디에고 파드레스전을 시작으로 다저스는 케빈 브라운-테리 애덤스-제임스 볼드윈-박찬호로 이어지는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선발 로테이션을 발표했다. 브라운의 첫 번째 선발 순위는 차치하더라도 시즌 내내 좋지 않은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홀로 다저스 로테이션을 지켰던 박찬호의 '4번째 선발' 순위는 많은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로테이션 발표 후 다저스 짐 트레이시 감독은 이번 로테이션의 박찬호 순위에 대해 가장 중요한 일전이 될 디백스 전과 자이언츠 전에 박찬호를 각각 두 번씩 등판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된 결과라고 짤막히 해명했다.

하지만 이 말을 그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트레이시의 발언에는 가장 근본적으로 말의 앞뒤가 맞고 있지 않다. 박찬호가 애덤스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박찬호는 디백스 전과 자이언츠 전에 두 번씩 등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차례(파드레스 전) 더 승리를 보장해줄 수 있다.

그리고 네임밸류나 커리어를 염두에 두더라도 박찬호는 당연히 2번째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애덤스가 들어가 있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될 수 있다. 우선 부상의 염려가 있는 박찬호의 후반기 들쑥날쑥한 컨디션 난조가 현재 코칭 스텝에게 신임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고 둘째, 장기적인 플랜(올 시즌 이후 계약상황을 염두에 둔 조치)을 고려했을 때 이제 애덤스에게 보다 나은 대우로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애덤스의 후반기 피칭이 박찬호보다 신뢰감을 주고 있고 안정된 피칭을 해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그 어느 팀을 보더라도 올 시즌 뿐만 아니라 5년 이상 한 팀을 위해 봉사한 '1급 선발투수'에 대해 확실한 이유 없이 일방적인 통보식의 조치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혹자는 이제 박찬호가 정말로 다저스와 이별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물론 그러한 의구심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즌이 끝나봐야 명확해 질 문제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다저스의 이해할 수 없는 조치가 올 시즌 투수부문에서 가장 팀 공헌도가 높은 박찬호의 기분을 극도로 상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박찬호는 짐 콜번 투수코치에게 이러한 로테이션 확정 통보를 받은 후 상당히 불편해진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과가 어떤 식으로 막을 내릴 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정신적(mental) 성향이 그 어느 스포츠보다 강한 야구 경기에서, 그것도 언제나 평상심을 유지해야만 하는 팀의 기둥투수에게 행한 다저스의 처사는 시즌 후 어떤 식으로든 심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저스 팜 출신이자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 페드로 마티네스는 다저스를 떠난 후, 다저스에 대해 극도의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역시 다저스 팜이 배출한 또 하나의 슈퍼스타 마이크 피아자 역시 이해할 수 없는 다저스의 처우로 트레이드 당했다. 거의 평생을 다저스를 위해 봉사했던 오럴 허샤이저도 그 흔한 은퇴경기 하나 없이 커리어에 걸맞지 않는 방출을 당하면서 다저스와의 연을 끊었으며 다저스가 낳은 최고의 신인이었던 퍼난도 발렌수엘라는 다저스를 그 누구보다 증오한다고 한다.

하나 같이 좋지 않은 모습으로 다저스와 적이 된 많은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들. 그들의 공통점은 다저스를 위해 평생을 봉사하는 선수가 되기를 바랬으나 하루아침에 좋지 못한 모습으로 다저스에 버림을 받았다는 것이다.

올 시즌 박찬호는 그 어느 해보다 힘든 시즌 후반기를 맞고 있다. 그것은 좋지 않은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전반기 내내 홀로 역투하며 다저스를 위해 뛰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다. 현재 박찬호에게 쏟아지고 있는 거의 푸대접에 가까운 처사와 그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들이 내년 이맘때쯤 어떤 식으로 재평가 될 것인가?

박찬호 4번째 선발 논쟁에 숨은 진정한 속뜻이나 이유는 당사자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저스의 처사는 시기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상당부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3-4년 후 어쩌면 다저스는 '제 2의 페드로 마티네스'마저 놓친 것에 대해 두고두고 후회할 지도 모를 일이다.

역시 메이저리그라는 사회는 오로지 실력만이 인정받는 냉정한 '승부의 세계'라는 걸 다시 한번 절감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저 작 권 자: ICCsports
본지와 ICCsports는 기사 컨텐트 협력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위 기사는 ICCsports의 서면 허가 없이는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