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재원/정책교란 부르는 통계조작

  • 입력 2001년 9월 9일 19시 06분


노동부 산하 고용안정센터의 통계조작에 이어 통계청이 근로자의 실질임금을 잘못 산정함으로써 정부의 정책 수립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고용안정센터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1997년 83곳에서 2001년에는 167곳으로 크게 늘어났는데 취업알선 실적을 경쟁하는 과정에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취업한 근로자를 구직자로 바꾸거나, 민간 직업소개소가 취업시킨 구직자를 고용안정센터가 알선한 것으로 조작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취업알선 실적을 조작했다고 해서 실제 실업률이나 취업자 증가율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간 또는 공공 취업 알선기관의 통계는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들의 취업률 등을 보여주는 지표로 실업 문제를 포함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수립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따라서 이들 통계의 조작은 제대로 된 노동시장정책 수립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이며, 도덕적 해이를 넘어서는 부도덕한 행위이다.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명목임금을 물가지수로 나누어 산정한다. 이 과정에서 통계청은 명목임금을 소비자물가지수가 아닌 생산자물가지수로 나누어 실질임금의 변동추이를 파악하기 어렵게 하는 실수를 범했다. 지난해 5∼9월에는 생산자물가지수, 10∼11월에는 소비자물가지수, 지난해 12월∼올해 5월에는 다시 생산자물가지수를 적용했는데, 통계청은 담당 직원이 바뀌어 실질임금의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있다.

명목임금을 생산자물가지수로 나누는 것은 기업의 입장에서 본 실질임금 개념이다. 이는 거시적으로 취업자 1인당 실질 부가가치 증가율을 계산하고 적정임금 인상률을 산정하는 경우에 사용된다.

통계청은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잘못을 저질렀다. 첫째, 실질임금의 분모가 월별로 달라 그 추세를 알 수 없게 했다. 둘째,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민간소비와 설비투자 부진으로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졌는데 그 이유를 식별해 경기활성화 대책을 구상하는 데 혼란을 초래했다. 실질임금, 즉 구매력지수가 낮아져서 성장이 둔화됐다면 정부는 통상 공공사업 지출 확대 등 재정정책으로 대처해야 하고, 민간소비보다 설비투자 부진이 성장률 하락의 원인일 경우에는 이자율을 낮추는 등 금융정책을 동원하는 방안을 고려한다.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의 상승률은 지난해 각각 2.0%와 2.3%로 나타났고 그 괴리는 올해 들어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를 사용해 올바로 산정된 실질임금은 2000년 중 5.6%의 증가를 보였다. 그러나 필자가 통계청의 방식대로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를 월별로 다르게 적용하여 실질임금 증가율을 산출한 결과 6.3%로 실제보다 높게 나타났다. 더구나 2001년 4, 5월의 실질임금 증가율은 각각 -0.3%였으나 잘못 산정한 실질임금 증가율은 각각 2.3%와 2.4%로 나타났다. 즉, 이미 4월부터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성장이 급강하고 있는데 통계청의 잘못으로 이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이 결과 경기침체의 주요 원인을 설비투자의 부진이라고만 보고 이자율을 하향조정하는 정책을 실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정부가 실질임금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민간소비가 되살아날 것으로 보고 이자율 하락으로 문제를 풀려고 했다면, 이자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늘지 않고 소득분배가 악화되고 부동산가격 상승 또는 투기성 주식투자가 성행하는 부작용을 초래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이자율을 지나치게 낮추어 더 이상 이자율을 낮추어도 경기가 호전되기 어려운, 이른바 유동성 함정에 빠지게 되면 경제운용이 매우 어렵게 될 것이다. 즉, 일본의 경우처럼 이자율이 0%에 가까운데도 미래의 실질소득 감소를 우려해 경제주체들이 소비보다는 저축을 늘리면 수요 감소로 투자 활성화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이는 미국이 경기호황기에 이자율을 높이고 경기침체시 이자율을 낮춰 금융정책의 실효성을 추구했던 것과 대조가 된다.

통계청의 실질임금 산정의 오류와 고용안정센터의 통계조작은 경기침체의 원인과 노동시장정책을 올바로 구상하기 어렵게 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향후 국가통계 관리에 대한 철저한 점검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김재원(한양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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