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유종호]종교에 억눌린 육체의 해방선언

  • 입력 2001년 8월 10일 18시 30분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 미하일 바흐찐 지음/아카넷 2000년▼

이 책은 영어 사용권에서 최초로 번역 상자된 바흐찐의 저서이다. 이 책은 바흐찐 생전에 자기 실명으로 간행된 3권중의 한권이기도 하다.

1968년 ‘라블레와 그의 세계’란 제목으로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켜 그의 저서는 속속 간행된다. 68년은 구미(歐美)에서 거리 극장이나 난장판 록 음악 연주회가 성행하고 파리에서 학생 봉기가 일어났던 해이다. 당대 공식문화의 금기에 대항하는 외설과 불경의 민중문화를 선양한 이 책의 발간은 결과적으로 시의적절한 것이 됐다. 그는 현대의 감성을 변모시키는 혁명적인 문화 사건의 선구자로 각광받게 되기에 이른다.

뒤를 이어 간행된 그의 전기는 이 그릇 큰 학자의 굴곡많은 삶과 스탈린 체제하 독립적 지식인의 어려움을 조명해 독자에게 깊은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소련 공식문화의 편협한 교조주의에 대해 거리를 두며 지적 독립을 유지했으나 그가 볼세비키 혁명의 궁극적 대의를 의심하였다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따라서 공산당이 처방한 제약을 넘어서는 문화사회학을 모색하던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그의 저서를 탐독하고 검토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익 지식인 조직에 간여했다는 혐의로 1929년 강제수용소 금고 5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죽음을 의미하는 섬에 수용될 예정되었으나 친지와 고리끼 등의 탄원 덕택에 카자흐스탄 추방 5년으로 감형되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때마침 나온 도스토예프스키론 초판본에 대한 교육인민위원(장관) 루나찰스키의 호의적인 서평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 나라의 정치 지도자가 국민의 의식 수준을 반영하듯이 대표적인 학자도 그 나라 문화 역량의 징표이다.

이 책은 논쟁 유발적인 저서다. 1940년에 학위 논문으로 완성되어 52년에야 준박사학위가 수여되고 65년에야 간행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보여준다. 얼핏보아 라블레가 의존하고 있는 근대초 유럽 민중, 축제 생활을 다루고 있지만 크게보면 유럽 문화에서 근대성으로의 이행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카니발이란 역사적 제도와 거기 관련된 민중, 축제의 형태는 중세 이후 유럽의 사회문화의 중요 주제를 해명하는 열쇠가 된다.

이 책은 가령 ‘카니발’ ‘카니발적’ ‘대관(戴冠)-탈관(脫冠)’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등의 주요 개념을 도입하여 비평적 관용어가 되게 했다.

바흐찐에 의하면 공식적인 축제와는 대조적으로 카니발은 모든 계층 질서적 관계, 특권, 규범, 금지의 일시적 파기를 축하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시간성의 축제이며, 생성과 변화 갱생의 축제이다. 카니발은 모든 종류의 영구화, 완성, 완결성과도 적대적이다. 이 책은 카니발 속에 있는 민중문화의 무정부적이고 몸에 바탕한 그로테스크한 요소를 선양하는 미학을 전개하면서 딱딱한 공식문화의 엄숙함에 대항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미학적 범주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일 것이다. 카니발이란 난장판 제도에 뿌리박고 있지만 물질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을 강조하는 라블레 문학의 특징을 강력히 시사하는 개념이다. 먹고 마시고 소화하고 배설하고 성교하는 육체를 칭송하는 것이 라블레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은 라블레의 발명은 아니며 카니발속에 표현되는 민중문화의 중심적 태도의 문학적 표현이라고 보는 관점이 옳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 가령 김지하의 몇몇 담시가 거기에 가장 근접한 것이라 생각된다. ‘비하를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는 원리에 가장 출신한 경우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역자 후기에도 밝혀 있듯이 비하와 전복, 경계 허물기를 통하여 표현된 것은 ‘양면 가치성’을 갖는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 책을 소련의 문화정치에 대한 굴절된 반론으로 읽는 관점도 있다. 공식 미확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해서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은 분명히 도전적인 반명제가 된다. 이 책은 독자가 공들인 만큼 보답도 큰 인지와 통찰의 지적인 카니발이기도 하다.

유종호(문학평론가·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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