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충식]'그들의' '그들 위한' 정치

  • 입력 2001년 8월 3일 18시 12분


새 한 마리가 빠르게 무엇인가를 향해 덮쳐 간다. 새는 어찌나 급했던지 사냥꾼도 몰라보고 이마를 스치듯 날아갔다. 고약한 새, 사냥꾼은 어이없어 하면서 쳐다본다. 새는 밤나무 숲으로 꽂히듯 내려앉는 것이었다. 사냥꾼은 활시위에 화살 하나를 얹고 새를 겨누었다.

그러자 기이한 광경이 클로즈업된다. 매미 한 마리가 나뭇가지 그늘에 앉아 제 몸을 잊어버리고 즐기고 있다. 그 바로 곁에 사마귀 한 마리가 그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풀잎 사이로 살금살금 다가서고 있었다. 새는 그 사마귀를 발견하고는 그처럼 황급히 덮쳐 든 게 아닌가. 사마귀는 매미에 정신이 팔려 새가 덮치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눈앞의 이(利)만 좇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는구나(見利而忘其眞).’

사냥꾼은 중얼거리며 활을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밤나무 숲에서 되돌아 나서는데, 어디선가 호통소리가 들린다. 아까부터 사냥꾼의 밤나무숲 침입을 지켜보고 있던 산지기가 밤도둑으로 오인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새를 좇다 산지기가 노려보는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장자(莊子)의 산목(山木)편에 나오는 유명한 당랑박선(螳螂搏蟬) 이야기다. 사냥꾼은 바로 장자 자신이었다. 장자는 너무도 놀라운 깨우침에, 이 사건이 있은 뒤 석달 동안이나 문밖에도 나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흐린 물을 보느라고 맑은 못물을 잊어버린’ 자신을 질책하면서.

제 목표만 향해 코를 틀어박고, 남이 빤히 속을 들여다보고 손가락질하는 줄도 모르고 질주하는 정치를 바라보면서 장자의 한 대목을 생각해 본다. 예를 들면 이 무더운 여름, 국민은 물난리에 시달리고, 더러 휴가 일정에 팔려 있는 판에 민주당이 무슨 국정홍보대회라 해서 군중을 동원하고 연설대회를 열었다. 물론 여당으로서는 한나라당이 옥외 집회로 ‘들쑤시니까’ 맞불을 놓는 게 아니냐고 한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두 정당이 사마귀나 매미잡이에 정신 팔려 제 위험도 모르는 것(忘其身)과 같다. 이 첨단 인터넷 시대에 야당이 의정부에서 무슨 시국강연회를 열고, 여당이 수원에서 국정홍보대회를 해서 누구에게 무엇을 알리고 호소해 얻어낸다는 것인가. 참으로 딱할 뿐이다. 인원동원 버스 대절에 돈이나 뿌리고, 자기들만의 잔치로 소리치고 손뼉치며 ‘남탓’하며 성토하다 제풀에 지쳐 헤어지는 것이 고작 아닐까.

한강 백사장이나 장충단공원에 인파를 모으고, ‘세치 혀’로 군중과 표를 움직이던 한 시절이 있긴 했다. 정보소통의 길이 비좁고, 따로 정치담론의 마당이 없었던 그런 당대의 환경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문 방송 인터넷으로 ‘시국’을 더 환히 알고 오히려 시국감각에 무딘 정치인들을 걱정하는 게 오늘날의 국민이다.

정부 여당의 국정수행 품질과 능력을 더 잘 알고 있는 게 국민이요, 홍보거리를 마이크로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마음에 새길 줄 아는 게 국민이다. 그리고 어차피 잘못된 일은 여당 최고위원들이 유세장에서 달랜다고 해서 감복하고 돌아설 국민은 드문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국민을 시국강연 대상으로 여기고, 홍보 설득의 객체로 삼은 것 자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짓들임을 정치인들이 깨달아야 한다.

그들은 집회장에서 나라걱정 국민걱정 목청 높여 외치지만, 기실 정치를 바라보면 그들끼리의, 그들만을 위한 ‘나쁜 정치’ 경쟁에 불과하다. 엊그제 수원 집회는 야당 총재를 겨냥한 성토장에 불과했다고 한다. 누가 더 잘해 보느냐보다는 누가 덜 손해보느냐, 어차피 욕먹긴 마찬가지지만 저쪽보다 덜 먹으면 이기는 것이라는 ‘네거티브 경쟁’으로 치닫는 것이 우리 정치인 것이다.

그렇게 정치가 코앞의 작은 이득에 매달리다 보니 ‘야당이 집권을 위해서라면 정치적 색깔에 따라 보수-혁신구도로 가야 한다’는 식의 위태로운 분열 책사(策士)들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지식은 방법이나 도구로서는 날카로운 눈을 갖지만, 목적이나 가치에 대해서는 맹목(盲目)이다’라던 천재과학자 아인슈타인의 탄식을 생각케 한다.

작은 잇속에 취하고 흐린 물에 집착하여 아귀다툼을 벌이는 정치는 위험하다. 우리 정치가 매미나 사마귀 따위를 노리고 골몰하는 사이 경제문제가 덮쳐 오고, 미국 일본 중국이 화살을 겨누고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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