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賜 暇 讀 書(사가독서)

  • 입력 2001년 8월 2일 18시 50분


賜 暇 讀 書(사가독서)

賜-내릴 사 暇-여가 가 避-피할 피

暑-더울 서 革-바굴 혁 罷-파할 파

避暑(피서)나 休暇(휴가)는 생산을 위한 일종의 재충전 기회다. 그저 먹고 마시며 노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잘못 인식된 탓이다. 우리가 정확한 의미를 이해한다면 보다 알찬 휴가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재충전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바쁘게 살다보면 평소에 책 한 권 읽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여름 휴가철 피서지로 떠날 때 책 한두 권을 가져가 읽곤 한다.

그러면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휴가를 보냈을까. 지금이야 엿새 일하면 하루 쉬고 그것도 부족하여 명절이나 공휴일이 있어 쉴 기회가 많지만 옛날의 관리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조선시대의 경우를 보자. 출근은 朝會가 있는 날이면 寅時(인시·오전 3∼5시), 평소에는 卯時(묘시·오전 5∼7시)였다. 첫닭이 울 때 일어나 별을 보고 출근했다가 酉時(유시·오후 5∼7시)에 퇴근했으니 이만저만한 혹사가 아니었던 셈이다. 여기에다 휴가라는 것도 특별히 없어 父母의 喪이나 기타 집안의 吉凶事(길흉사)가 아니면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世宗大王은 확실히 賢君(현군)이었다. 조선 최초로 ‘賜暇讀書’(사가독서· 휴가를 내려 공부에 전념토록 함)라는 일종의 有給休暇(유급휴가)제도를 실시했던 것이다. 즉 1424년(세종 6년) 12월, 최초로 集賢殿(집현전) 학사 중 젊고 유능한 인재를 골라 휴가를 주어 학문에 전념토록 했으며 말엽(1442년)에는 申叔舟(신숙주) 成三問(성삼문) 등 6명을 뽑아 서대문 밖의 津寬寺(진관사)에서 글을 읽게 함으로써 上寺讀書를 실시하기도 했다.

賜暇讀書제도는 그 뒤 中宗이 구체적인 節目을 마련하도록 지시함으로써 제도적으로 시행됐다. 그리하여 1517년(중종 12년) 豆毛浦(두모포·현 서울 옥수동)에 정자를 지어 東湖讀書堂(동호독서당)이라고 하였다.

선발된 학자에게는 임금의 총애와 함께 지극한 대우가 따랐으니 궁중 음식이 재공되었고 때로는 왕으로부터 직접 술잔이 내려지기도 했다. 어찌 보면 특별포상휴가인 셈이다. 이 제도는 그 뒤 임진왜란 이후 명맥만 이어오다가 1709년(숙종 35년) 이후 폐지되었다.

이 때문에 東湖讀書堂이 있던 지금의 옥수동 일원을 얼마 전까지도 독서당 마을이란 뜻으로 ‘한림말’이라 불렀고, 약수동에서 옥수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讀書堂고개’, 그 길을 지금도 ‘讀書堂길’이라고 부르고 있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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