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재성/건교부의 '날림정책'

  • 입력 2001년 7월 26일 18시 22분


건설교통부가 최근 보여주는 일련의 움직임을 보면서 행정 수행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건교부는 23일 ‘도시 주거 환경 정비법안’을 발표하면서 나중에 재건축할 때 필요한 사업비로 쓰도록 모든 아파트 거주자에게 매월 3만∼5만원(100㎡ 기준)의 적립금을 의무적으로 내게 하는 ‘재건축 적립금 의무화’ 법안을 들고 나왔다.

이 적립금은 연간 2조원 규모의 국민 부담이 추가되는 ‘중요한’ 사안인데도 건교부는 여론 수렴을 위한 공청회를 갖기는커녕 언론 보도자료에도 넣지 않았다.

건교부는 이에 대해 “중요한 골자만 넣다 보니까 보도자료에서 누락됐을 뿐”이라며 “입법 예고 내용을 인터넷으로 모두 공개해야 하는 세상에서 숨길 수도 없고, 숨기려는 의도도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630만가구(2000년말 기준)의 아파트 입주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 우선 순위에서 밀려 3쪽 분량에 달하는 보도자료에서 빠졌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동아일보의 문제 제기 보도(25일자 A8면)와 잇따른 여당측 반대에 부닥친 건교부는 발표 이틀만인 25일 ‘재건축 적립금 납부는 입주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고 바꿨다.

그러나 아파트 입주자들이 자발적으로 적립금 납부를 결정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고, 따라서 법안은 사실상 백지화된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현재 벤처단지 규모에 대한 논란으로 사업이 중단된 판교 신도시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건교부의 자세도 문제다.

건교부는 연초 경기도와 협의하면서 벤처단지 규모를 60만평으로 정했으나 6월말 당정 합의 때는 벤처단지 규모를 일방적으로 10만평으로 축소, 경기도와 일부 여당의원의 반발을 자초했다. 결국 지난달 말에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연내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키로 했던 판교 신도시는 지금까지 사업 추진이 중단됐고, 이해집단의 갈등을 증폭시킨 채 표류 중이다.

황재성<경제부>jsonh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