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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7월 23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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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으로서야 일단 반색할 만하다. 예컨대 영남지역에서 정당이야 한나라당을 밀더라도 의원은 민주당후보를 찍는 유권자가 있을 것이고 또는 그 반대라 해도 어쨌든 ‘한나라당 싹쓸이’는 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논리라면 한나라당도 굳이 떨떠름해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호남지역이라고 같은 상황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을 테니까.
어디가 더 똘똘 뭉치니 그렇지 않느냐는 식의 소리는 더 이상 듣기조차 싫다. 그것을 극복해내지 못하는 한 어느 쪽이 다음 정권을 잡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일 테니까. 자민련의 걱정은 야박하게 말한다면 ‘댁의 사정’이다. 유권자가 지지하지 않는다는데 무엇을 탓하랴.
아무튼 1인 2표제가 되어 현재의 지역당 구도가 조금이나마 누그러진다면 좋은 일이다. 하나 지금처럼 지역감정이 악화돼서는 꼭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의원, 정당을 몰아 찍어 지역주의가 더욱 선명해질 수도 있다. 그런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면 어느 쪽이 다음 정권을 잡든 정말 끔찍한 일이다. 여야(與野)가 적어도 그런 사태만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텐데 오로지 정권을 재창출하느냐, 정권을 탈환하느냐에만 온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으니 걱정이다.
1인 2표제가 되면 민주노동당 같은 대안정당의 국회진출로 의회정치의 폭이 넓어지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당도 원내 안정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채 여소야대(與小野大)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여소야대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을 견제하는 데는 여소야대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
1988년 13대 총선 이후 2000년 16대 총선까지 집권 여당은 원내 과반수 의석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는 한결같이 합당, 의원 빼내오기, 정당연합 등 민주체제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여대야소(與大野小)로 뒤집었다. 다수야당의 ‘발목잡기’를 피해 국정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서 불가피했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렇게 여대야소를 만들었어도 의회는 파행을 거듭하고 국정은 좀처럼 난맥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속한 정당이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하지 못하는 ‘분할정부’를 운영해나가자면 미국처럼 대통령이 야당 또는 야당의원을 설득해 협력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하자면 무엇보다 대통령이 야당을 끈기 있게 설득하는 상생(相生)의 리더십을 보여야 하겠지만 국회의원 또한 개별적 헌법기관으로서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의원 개개인의 양심과 소신, 판단에 따라 사안별로 대통령이나 정부여당에 협조할 것은 협조하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여당의원이 야당에 협조할 수도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여야 가릴 것 없이 ‘1인 보스’ 하에 사사건건 당론에 묶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총재의 사적 정치적 이익을 당론으로 포장하고 공천권을 무기로 의원을 ‘거수기’화 할 수 있다. 더구나 야당총재가 사실상 다음 대권후보인 우리 정치현실에서 개별 의원이 거수기 역할밖에 할 수 없다면 상생정치는커녕 대선이 끝나는 다음날부터 대권투쟁에 몰입하기 십상이다. 그동안 우리 정당이 그러했지 않은가.
이런 틀을 깨야 한다. 우리의 정치문화 수준이나 권력의 행태 등에 미루어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은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을 높여 정당민주화에 힘써야 한다. 국회법에 의원의 양심과 소신, 판단에 의한 표결행위를 보장하는 크로스 보팅(cross voting·교차투표) 조항을 명기해야 한다. 예외는 정당 존립에 관한 문제 등 교섭단체별 의원총회를 거친 사항에만 제한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선거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국회의원이 뭐 이러냐’는 소리가 계속 나와서는 정치 선진화는 요원하다. 정당민주화 없는 정치개혁은 구호일 뿐이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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